운명이라서
오랜만에 친구랑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였는데 늦잠은 잤다고 약속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기 직전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난 거야.
그렇게 차에 치여 난 넘어졌고 주변 사람들이 119에 신고해서 병원으로 가게 되었어.
다행히도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지만 인대가 많이 놀라고 다치긴 했어 그래도 며칠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아. 사고가 난 뒤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이 우연히 생긴 건지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생겼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그 사람과 만나지 말라는 신호였는지, 집에만 있으라는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어.
나는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고 생각해. 우연이 있다면 그건 그냥 운명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야.
느닷없이 다가온 차를 난 피할 수 없었고, 다행히도 백미러랑 앞바퀴가 내 왼쪽 발만 제대로 밟고 지나가서 많이 안 다친 거 같아 다행이야라고 마음먹기로 했어. 안 좋게 생각해봤자 내 기분만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어.
그 날은 그 사람과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인 거 같아.
다쳐서 병원을 가게 된 것도 그렇고 약속시간을 늦췄던 것도 그렇고 그렇게 절묘하게 사고가 난 것도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운명이라고 해도 피할 수는 없는 게 또 문제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할 운명이었던 거고
필연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다가온다 해도 그 불행은 이미 나의 것이 되어있으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초인적인 무엇인 거지.
하지만 그런 운명적인 일이 생기고 난 뒤에는 우리의 힘으로 조금은 바뀌어 나갈 수 있어.
난 너무 재수가 없어서 이런 사고가 난 것이야.
난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기분은 전환할 수 있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
모든 것은 그런 거야.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
내가 만나야 할 운명적인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 운명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만나봐야 알겠지만 그 사람과 이별하고 난 뒤에 것들은
더 이상 운명의 몫이 아닌 거야. 그 뒤는 내가 감당해야 할 온전한 나의 것이 되어있는 거야. 그 운명의 선물을 되돌려보낼 수 없어. 하지만 선물을 받고 난 뒤에는 그것에 대한 태도는 분명 내가 정할 수 있어.
이별했다고 해서 못 잊고 그리워하는 것도 이별을 하고 나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야.물론 그 뒤에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또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하루하루는 연습이고 과정이니까.
팔자가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생활에 대하여 불평불만만 늘어놓지 말고,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야.
발을 다치고 나니까. 발의 소중함을 더욱더 절실히 느끼고 있어.
당신과 헤어진 사람도, 이미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야.
잃어본 사람은 알거야. 모른다면 그것에 대한 마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운명을 피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직시해보자.
두려워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그냥 딱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여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예쁘게 포장해보는 거야.
조금은 아프더라도 너무 낙담하지도 말았으면 해.
절망하지도 말고 힘든 일이 있을수록 힘을 내야 하는 거야.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은 꼭 만나게 되어 있고,
내일도 피할 수 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니까.
'오늘'을 아침에 맞이했다면 밤에는 보내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일이면 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거야.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와도
행복도 또 귀 뜸 없이 놀러 올지 몰라.
그러니 우리 운명을 사랑하고 품어보자. 그리고 더 멋지게 관리해서 잘 담아보자.
재수없게 가 아니라, 다행히도 널 만난 거라 생각하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