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덕호 Feb 17. 2016

당신의 제주

안녕한가

당신의 제주, 나의 제주.

몇 년 만에 제주였다. 그것도 예전에 왔던 멤버들 그대로 함께 다시 제주를 갔다.

내겐 추억 속의 사람들이었다. 풋풋한 스무 살 때부터 대학 4년을 함께 동거 동락했던 가족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왔던 제주를 다시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던 찰나 우리는 버겁게 시간을 맞추어 다시 여행을 떠났다.


설렘이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을 만나 다시 또 새로운 추억으로 덮어쓰기 한다. 제주는 그렇게 언제나 좋아.

그런데 우리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날씨가 흐려진다. 생각하지도 못했다.

친구가 말한다. "난 비를 몰고 오는 사람인가 봐. 저번에 제주에 왔을 때도 비가 왔었는데"

여행 일정을 짜고 온 우리들이 아니었기에 그냥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월정리에 가고 싶었어."

"우리 오늘 월정리로 가보자."

"날씨가 흐려서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한번 가보자."


이미 비가 오고 있었다. 우리가 있던 숙소에서 월정리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비가 와서 제대로 구경을 못할 거 같았지만 그냥 그냥 가고 싶었다. 그냥 끌리는 기분.

괜찮아. 사람들은 맑은 날의 월정리를 보고 갔다면, 흐린 날의, 비 오는 날의 월정리도 괜찮을 거 같아.

비가 오면 어때, 우리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여행은 그런 거잖아. 다 좋다고 좋을 수가 없는 거잖아. 거기서 그냥 우리가 행복하면 그게 최고잖아.









월정리는 아름다웠다.

비가 와서 사진을 제대로 찍기도 힘들고, 우산을 펴면 날아가버릴 거 같은 날씨였다.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약속을 한다. 우리 날 좋은 날에 다시 한번 더 오자고. 그렇게 다음 여행을 미리 약속한다.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약속은 어쩌면 가벼울 수도, 어쩌면 우리가 다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을 거야.

세상에는 억지로, 무조건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날씨는 물론이고, 사람과의 관계도, 하고자 하는 일도 다 뜻대로 될 수는 없다. 그것을 우린 알고 있다. 답답해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언젠가는 다시 따뜻한 날이 돌아오게 돼있으니까.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마음. 그걸 어쩌면 여행에서 배우고 오는 것이 아닐까.

너무 많은 것을 바랄 필요는 없다는 것. 같이 여행을 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감사할 일이고, 추억으로 남을 일이니까.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무엇이든지.







여행에 빠져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끌고 갈 것인지, 이끌려갈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


하루를 유심히 관찰하면 의미가 보이듯,

모든 게 꼭 나쁜 것이 아니듯,

좋은 게 다 좋은 것이 아니듯.


세상에는 좋은 생각과 의미가 있다는 말.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말이었다. 항상 이런 말씀을 해주는 아버지에게 고맙다.

늘 그렇듯 나의 멘토이자, 롤 모델이자, 든든한 나무 한그루 같은 사람이다.

습관처럼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어버리듯, 다시 한번 순응하며 어른이 되는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아직은 확실히 어리다고 생각되니까.











복잡하지 않고, 망설임이 없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비가 너무 오는 탓에 실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쿠아리움에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다들 동의해서 움직였다.

다양하고 신비로웠다. 한편으로는 하얀 유리 창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민망했다.

혹시 저 녀석들도 우리를 안타깝게 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유리통 안에 갇혀 있는 우리의 모습.

스스로 갇혀 있는 곳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

그러니까 우리는 답답해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

과연 저 물고기와 우리가 무엇이 다를까. 어려웠다.


입맛에 잘 맞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서로의 피로를 달래 주고, 생글생글 웃고, 쓰라린 곳이 있으면 치유해주고 싶다.

비나 햇빛을 옴팡지게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게 일부가 되어 삶을 맞이할 것이니까.

내일을 상상하고, 오늘 하루에게 애정을 주는 것.

아침을 웃으면서 시작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돌이 아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한 돌은 다르다. 내 마음이 스쳐간 돌은 그 순간으로 인해 특별해진다.

당신도 그렇다.

내 마음을 잠시 가져간 사람이 아닌가.

온기를 느꼈던 사람이 분명하니까. 어떻게 그저 그런 사람들과 똑같겠나.

모르고 스쳐가지 않았고 손길 한 번으로 정을 주었던 사람.

그렇게 돌을 하나 올리고 소원을 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 좋은 추억으로 남게 해 달라고.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욕심이지만, 행복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특별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살면서 마주치는 벽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