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여름 May 09. 2023

6. 문화적 유산

함께 자라는 순간들.

아이에게 단 하나만 남겨줄 수 있다면, 무엇을 남겨주고 싶은가?

나는 이 질문을 자주 상기한다.


남겨주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공부 잘 하는 습관, 바른 태도, 돈 버는 방법, 또 내가 가진 얼마 안되는 자산들도 남겨 주고 싶다.

열정이 많은 엄마는 주위에서 보고 듣는 요즘의 트렌드에 따라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사주고, 또 해준다.


하지만 단 하나만 남겨줄 수 있다면,

나의 대답은 늘 책을 읽고 사랑하며 가까이 하는 태도이다.


나도 그렇게 책을 잘 읽고 아주 많이 읽어본 건 아니다.

학창시절에도 뭔가를 읽긴 했지만, 감동을 주는 명작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고, 가끔 생각보다 일반상식이 낮은 내 모습에 꽤 놀라기도 한다.

나는 점점 크면서, 어른이 되고 대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책을 읽게 되었다.

삶이 어려워지고 뭔가를 바꾸고 싶고 잘 되고 싶은데 주위에 물어도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럴 때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가서 현재 나의 마음상태를 제일 잘 알아줄 만한 책을 골랐다. 수많은 책들을 보면, 나를 위한 상담가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책을 고르는 시간에도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작가들은 책 한 권에 자신의 영혼과 경험을 쏟아 붓는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소설책은 그 나름의 힘이 있다. 소설이 만들어 놓은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면서 더 가혹한 경우가 많다. 소설 속 극적인 요소들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내가 현실 속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여덟살이 된 아이가 어제 잠을 자면서 일곱살 때의 선생님과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 천장을 보면서 선생님과 친구들 한명한명을 그려보고 있어. 친구들과 선생님이 너무 보고싶어.”

다음 날 아이는 자신의 그리움을 꾹꾹 눌러담아 색종이에 편지를 썼다. 놀이터에서 만난 유치원 후배를 통해 선생님께 전달하기로 했다.

아이는 예전에도 누군가가 보고 싶다는 얘길 하긴 했지만, 아이 생에 첫 이별은 사실 상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이었다.

좋아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짙은 그리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점차 겪게 될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양질의 책을 통해 더욱 풍부하게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한 권의 책이 연료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인생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 미세하지만 엄청난 변화는 변화가 생길때마다 누군가에 의해 책으로 기록될 것이고, 읽는 자만이 변화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챗GPT에 대한 책이 한 섹션으로 마련되어 있다. 나는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서점에 가서 보고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책만큼 트렌디한 것도 없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기까지의 과정은 힘들다. 실제로 책을 읽는 과정은 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기에 피곤한 과정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책을 읽는 것은 연어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내 안의 수많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지키려는 마음을 깨고 책을 펼쳐야 한다. 습관이 되다보면 자연스러워 진다.

그렇게 책을 읽는 길을 가게 되면 삶을 더욱 농밀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듯이, 아이가 책을 사랑하게 될 지 아닐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6년 11개월 동안을 회고해 보자면, 2살 무렵 아이는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4살무렵에는 한글을 모르는데도 책을 술술 읽어서 신동인 줄 알았다.

이후 점차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 또 친구들과 놀면서 재밌는 게임이나 놀이를 배워가면서 책을 읽는 빈도수는 점점 낮아졌다.

자기 전 아빠가 읽어주는 책 한 권의 시간, 그리고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독서 20분의 시간이 겨우 아이의 독서 시간을 연명해 준다.


아이의 본능은 내가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집안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우선, 거실에 있던 TV를 다른 방으로 옮기고 거실을 서재화, 작은 서점화 하는 것이다.

아직은 공간과 예산 부족으로 원하는 인테리어를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방향은 늘 집의 서점화이다. 공간의 변화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서점이나 도서관을 함께 다닌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지하철로 이어진 광화문 광장 지하의 이순신 전시관에서 스크린에 대포를 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주말 루틴 중 하나다.

도서관은 동네 도서관 뿐만 아니라, 다른 특색 있는 도서관을 나들이 삼아 가려고 하는 편이다. 가서 책 한권만 읽고 와도 성공이다.


그리고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함께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하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퀴즈도 낸다. 서로 느꼈던 점이나 관련된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

서로의 일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북클럽에서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람을 잘 몰라도, 꼭 잘 아는 것 같다.

책은 서로를 진실에 가깝게 이어준다.


이러한 ‘의도된’ 노력들이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어린시절에 ‘책 읽는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럴 때 희열을 느낀다. (교보문고에서)




작가의 이전글 5.바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