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는 순간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무조건 ‘유전자의 신비함’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구석은 신기하리만치 나를 닮거나 남편을 닮거나,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를 닮아있다.
닮은 점을 찾기 힘들더라도, 과학시간에 배운 유전의 이론은 무의식적으로 닮은 점을 찾아내고 닮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유전은 증명된 과학이다.
나는 가끔은 그 과학이 무의식적으로 아이와 나를 동일시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나 스트레스가 생겨 나는 것 같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만큼 따라오지 않을 때,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때 부모는 아이를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에 올려놓으려고 한다.
심한 경우 윽박을 지를 수도 있고,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미세하게 끌어당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는 아이를 나의 줄기에서 나온 잎이라 생각하고, 그 잎에 꽃을 피우기 위해 줄기가 열심히 양분을 대는 것과 같다.
아이는 또 다른 씨앗에서 나온 꽃이다. 물론 씨앗의 종류가 같을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도 줄기가 있고 뿌리가 있다. 앞으로 피게 될 꽃의 형태나 모양, 색깔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꽃이다.
나는 꽃을 하나 더 피웠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고, 그 꽃이 잘 자랄 수 있게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고 좋은 말을 해 주면 된다.
꽃에게 너는 어떤 모양으로 어떤 색깔로 어떤 향기를 피워라 라고 간섭한다면, 금방 시들어 버릴 것이다.
아이에게 늘 우리 가족은 하나라고, 한 팀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학교 생활은 우리의 사회 생활만큼 치열할 것이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해내느라 수고가 많을 것이다.
그런 아이의 순간 순간에 늘 너의 편이 되어 줄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자주 상기시켜 주려고 한다.
하지만 팀의 구성원들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물론 우리에게 공동의 목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구성원 하나하나는 개인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
나의 다른 꽃이 나에게 아름다운 말로 힘을 주고, 고사리같은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나를 위로할 때가 있다.
나만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늘 겸손한 마음으로 다짐한다.
아이는 내가 키워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자라고 있고,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힘을 주는 대상이다.
‘양육가설’이라는 책은 부모의 양육이 생각보다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기한 책이다.
부모의 양육환경보다는 아이가 겪어내는 또래집단이나 사회적인 환경이 더욱 아이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부모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아이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본성이나 현재의 상황에 어울리는 환경에 아이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재를 이해하는 부모, 영재로 착각하는 부모’ 라는 책에서, 어떤 학자는 ‘가정 환경은 비타민 c와 같다’ 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비타민c는 부족하면 병이 생길 수 있지만, 일정량 이상을 먹게 되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결과치는 같다.
아이에게 비타민c는 필요한 만큼만 주자. 나머지는 그의 몫이다.
그리고, 또 잊지 말아야 할 사실. 나도 꽃이다. 나도 누군가의 꽃이었고, 누군가의 꽃이 될 수 있고, 스스로 꽃피울 수 있다.
놀이터에서 ‘ㅇㅇ엄마’로 불리며 아이를 쫓아다니고, 아이의 현재 입에 묻은 밥풀에서 미래에 밥값하며 지낼 날들에 대한 걱정까지 소상히 하다보면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있다. 아이의 성장 수준이나 단계를 나의 ’희생‘의 결과로 치부할 수 있다.
아이의 학교에서의 피드백이나 학원에서의 공부 수준에 대한 피드백으로 나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싫다. 잔잔한 호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 너는 너의 길을 잘 가고 있구나.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거야.“
이 말을 매일같이 해준다면, 아이는 남은 100세의 인생도 혼자서 잘 살아갈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라는 꽃에게도 필요하다.
“그래, 너는 너의 길을 잘 가고 있구나.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