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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Aug 21. 2021

나는 그렇게 문 밖을 나섰다.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2021, 나는 그렇게 문 밖을 나섰다.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2021, 하는 일 없이 그렇게 2021년이 왔다.

 왠지 모를 우울감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좋아하는 음악을 핸드폰에 가득 담고 이어폰을 들고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문을 열고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드니, 코끝까지 찡한 차가운 공기와 새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이 내게 속삭이며 반기듯 바람을 타고 온몸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래 이 느낌이었지... 바람, 공기, 이 느낌이었어."
 

 한참을 잊고 지냈던 것들, 생명을 잃어가던 세포들이 공기의 흐름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었다. 차가운 공기가 바람이 되어 피부에 스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들은 신기하게도 지금의 내 마음에 말을 거는 듯 그대로 속삭이며 답을 한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거울을 보면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오고 가던 골목길의 추억들이
동그랗게 맴돌다 간다.

 가슴속에 하얀 꿈들은 어느 하루 잃어버리고
 솟아나는 아쉬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본다.
 가득 찬 눈물 너머로... 아~ 아~~~ 아~~~ 아아~~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 자우림

    

 나에게만 들리는 이 음악, 마치 영화처럼 배경음악으로 깔려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들에게만 속삭이는 무가가 있었고 밀려오는 감정들이 있었던 것이었다.]   

      


문 밖 세상에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들이 있었다.

 음악에 취해 잠시 멈춰 섰던 곳에서 시선을 돌려 보니 집집마다 썰매를 들고 나온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썰매를 타고, 어른들도 아이들 따라 썰매의 끈을 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이들보다 더 애쓰며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 그리 신나는 일이라고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입가에는 그런 사람들을 따라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지에서 어른들은 썰매 줄을 잡아끌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에 "더요~ 더요~"하며 신이나 함박웃음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저리도 행복해하다니...'


생각해 보면 행복이란, 그다지 멀리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 맞는듯하다. 저런 평범한 일상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걸 잊고 산지 오래, 세상은 늘 혼자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왔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똑똑, 저 아줌마, 좀 비켜주세요. 나갈게요"

6~7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내 허리춤에서 말을 건넨다.

"어? 어... 아줌마지, 그래 그래, 미안"

바로 옆으로 아이들이 마스크를 썼는대도 나를 아줌마라 부르며 지나간다. 

'마스크 쓰면 아가씨 같은데...'

아줌마를 아줌마라 불렀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니 좀 서운했다고 해야 하나?


 결혼을 하고부턴 누구의 아내, 아이를 낳고부턴 누구의 엄마로 불렸지 '나'로 불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언니나 아버지가 이름을 불러주긴 했지만 새롭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익숙해져야 하는 단어가 하나 더 늘어났네. 아줌마라...'     


나를 아줌마라 부른 아이들이 길을 비켜주자 신이나 우르르 쌓인 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늘진 한쪽 구석, 소복이 쌓인 눈 속으로 뛰어든 아이들은 순서를 정해 한 명은 끌고, 한 명은 썰매를 탄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저 작은 아이들이 순서를 정해 놀이를 이어가는 걸 보니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모습들이 우울한 가운데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보통 우울할 땐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저 아이들이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고 간 듯했다.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감도 사라지고 꽁꽁 언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다.] 


음악이 신기한 건지, 세상이 신기한 건지, 우울감은 문을 경계로 가득 찼다가 차가운 바람과 함께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토록 차가운 바람까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라니, 문밖을 나서기 전의 나와 문밖을 나선 나의 마음이 너무 차이가나 헛웃음이 났다.


"에휴~ 이 아줌마 속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가진 아줌마들이 있는 거야? 아줌마, 갑시다. 나랑 산책이나 갑시다요."


장난처럼, 피식~ 웃으며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길을 나섰다.


 세상이 내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2021년, 나의 첫걸음을 살아온 세월만큼, 인생의 무게만큼, 소복한 눈길 위에 무겁게 아주 무겁게, 한발 한발, 꾹~ , 꾹~,  눌러 발자국을 남기며 걷기 시작했다.


_ 나는 그렇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_

아이들 웃음소리엔 신기한 마법의 주문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까르르' 웃는 웃음 속에 어른들은 모르는 마법의 주문이 있는 듯하다. 어른들은 부리고 싶어도 부릴 수 없는 아이들만의 마법의 주문, 우린 그 주문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어느새 동화의 나라로 날아가는 것 같다.

 마법의 주문을 외지 않아도 아이들과 함께라면 들어갈 수 있는 동화의 나라, 어른들은 동화의 나라에 발을 딛곤 자신들도 어린이였음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 어린 시절 꿈꿔왔던 세상과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자신을 찾아 아이처럼 그렇게, 그렇게 동화 속 세상의 문을 열고 신나게 뛰어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쩜 나의 동화나라 여행도 그렇게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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