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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03. 2021

브런치 작가

이 글은 현재 계정이 아닌 다른 계정으로 작가 신청해서 썼던 글입니다.

현재 두 번째 계정으로 글을 옮겨 오는 중입니다. [아까워서 습작일지라도 모으는 중입니다^^.]




"여러분, 저 브런치 작가 됐어용 ~~~"

 

이게 뭐라고 나름 기분을 업 시켜준다. 주변에 알리못해 혼자 중얼~ 중얼~ 하려니 답답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것처럼 글 속에서 외쳐 본다.  

   

예전에 EBS에서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응모한다는 글을 봤었다.

그땐, 한번 도전해 볼까도 싶었지만 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아 글 잘 쓰는 언니에게만 알려주고 말았었다.     

그런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는 얼마 전 형부가 작가로 글을 올린다는 정보를 얻고부터이다.

[솔직히 가족끼리 이런 거 공유하고 그러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라 숨긴 것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끄러움? 언제나 내 부족함은 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름은 못 알아보게 설정해 놓고 몰래몰래 훔쳐보듯 올라온 글마다 읽기 시작했다.     

"오~ 쫌 쓰시는요? 좋아요 꾹~ 꾹~ 눌러 드려야징"

[이건 실제 내 말투다. 이 말투를 보면 내가 누군지 짐작할 수 도 있겠지만 모를 수도^^]

 알람이 울릴 때마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읽고는 마지막 '좋아요'까지~

완벽하게 내가 누군지 속인 듯했다. 누군가를 속인다는 게 이렇게 심장 떨리고 스릴 있을 줄 몰랐다.

'그렇다고 나쁜 길로 가는 건 아니~ 아니~ 되오'

~ 떠있는 기분에 혼잣말을 한 후 브런치를 둘러봤다.    

               

브런치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글을 쓰고 있었다.

가끔, '이런 글 써도 되는구나... '하는 우도 있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번 써볼까?"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재를 선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기로 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었다.     




나의 브런치 작가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작가 신청이 받아질 거라 기대 하진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된다고 좌절  말고, 내가 글 쓰는 걸 업으로 두는 사람도 아닌데, 창피할게 뭐가 있겠어?

안되면 블로그에다 쓰면 돼지. 한참 블로그도 안 해서 횡~ 한데, 이 기회에 다시 시작해 보지 뭐"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쓰기 시작했다.     


글을 다 쓴 후 작가 신청을 누르고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진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도 되는 거야? 나 작가인 거야? 작가라 하기엔... 좀 부끄러운데... 신청하면 다 되는 건가? 내가 된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솔직히 작가라 불리기엔 부족한 게 많은 건 사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여하튼, 가족들에겐 절대 비밀로 해야지, 창피하잖아?"

그렇게 가족들에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하는 시간

이젠 정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고민이 됐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생각할 땐 부끄러움 없이 편하게 자판을 두드렸는데, 누군가 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힝~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ㅜㅜ 그냥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나중에 못쓴다고 잘리기도 하나?"

"누가 내 글을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어? 첫 발행 글에 오타가 있네. 흐름은 왜 저래ㅜㅜ 고치면 안 되는 건가?"     

역시 오랜 집콕 생활엔 부작용이 따라오는 듯했다.


그리도 당당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심한 나만 남아있었다.     

"사람은 생활환경에 따라 마음의 크기가 달라지나? 나 왜 이러냐@.,@;"

"아이~ 몰라~ 몰라~ 작가 신청됐다고 누가 내 글을 읽겠어? 어쩌다 한두 명 들어와서 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다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솔직히 글을 쓴다는 건 치유의 목적도 있었다.

낯가림이 심하거나 한참 동안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주눅이 들어 있거나 소심해져 있기 마련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상대와 대화를 할 때도 가끔은 서투른 말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말보단 글로 표현할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 [ㅎㅎㅎ]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저장해 두고 썼다 지웠다를 할 수가 있다. 또 상대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편하게 자신의 언어로 지금의 심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우울감이 해소되기도 한다.

독백이지만 때론, 누군가가 그 독백을 읽어 주 바라고 공감해 주길 바랄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요', 눌리는 걸 좋아하나 보다] 소통이 싫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낯선 이들과의 소통을 원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sns에 글을 쓰고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이 담겨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도 그렇지만 글도 그런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고,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마음에 누가 감히 잘했다, 못했다, 평가를 하며 기준을 둘 수 있을까?

어느 누군가에게는 형편없는 그림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따뜻할 만큼 감동적인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형편없게 느껴지는 글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확히 누가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글이었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한 영화를 봤다.

사람들이 맛없다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영화는 재밌었고 음식은 맛있었다."  

 [대충 이런 글?]  


누군가에겐 재미없었던 영화가 내겐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맛없던 음식이 내겐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지만 이 당연한 것들을 많은 사람들은 잊고 사는 듯하다.

[이 모든 것들에 별을 달아 평가하는 시대가 지금 아니던가]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지만 또 좋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저 '좋아요'별의 세계에선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수많은 경험들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나의 글이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관심 밖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곳에서 마음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책을 내려는 욕심도, 작가의 욕심도 없다. 그렇다고 나의 글을 읽으라고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쓰고, 어쩌다 스치듯 오가는 이들이 가끔 들여다 봐주면 그걸로 된 것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 본 적 없는 나는, 글을 잘 쓰는 법도 모른다.

가끔은 띄어쓰기나 오타도 있을 것이다. 또 가끔은 문맥의 흐름이 이상하게 흐를 때도 있을 테고, 또 가끔은 처음 쓴 주제와 어긋나 이상하게 마무리될 때도 있을 것이다. [뭐 어쩌겠나, 다 그렇게 실수하며 배워가는 거지]


그렇게 도전하며 도전 속에 실수도 해보고 실패도 맛보고 성장해 나가는 거 아니겠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험을 통해 배우며 익히며 발전해 나가면 된다. [그 과정에 부끄러움과 좌절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 되겠지만, 그 또한 잘 이겨내고 극복해서 성장해 나갈 거라 믿는다.]


[글이나 그림에는 화려한 기술보단 어쩜 평범함이 더 낳을 수도 있지 않겠나. 자기 합리화? 중^^;]    


글을 처음 시작하며 써 내려가는 이도 나이고, 끝을 맺는 이도 나이기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쓰기로 했다.

'쓰다 보면  알게 되고, 쓰다 보면 느끼게 되고, 쓰다 보면 배우게 되겠지. 각자의 인생에 귀를 기울이고 삶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나누는 게 예술이 아니던가. 글도 예술이야.' 나는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글을 쓰기로 했다.


내 나이 마흔 중반에 두려울게 뭐가 있고, 못할게 뭐가 있으랴. 마흔 넘어서도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고,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을 내가 보여 줘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중년, 자신이 배운 거 없어 부족하다 느끼는 중년, 타인의 평가에 익숙해져 내게 기울어질 잣대로 평가될게 두려운 중년, 인생 뭐 있습니까? 그냥 해봅시다. 젊음만 도전하나요? 중년도 도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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