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점에 발을 내딛다.

by 박정관 편집장

필자는 외환위기로 국제구제금융(IMF)을 받던 1997년 무렵 퀵서비스 업무를 시작했다. 신문 판촉했던 일 외에 마땅한 기술이 없었고, 자본금이 크게 들지도 않아서 광고를 보고 찾아온 몇몇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그 일을 함께했다. 제임스 본드가 출연한 007시리즈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 이름을 빌려와 007퀵서비스로 상호명을 정했다. 남구 야음동의 엄마 집에 얹혀살았던 나는 엄마의 연립주택 2층 유리창 바깥 벽면에 아크릴 간판을 내걸었다. 오토바이와 다마스 같은 경차를 보유하고 있는 조건으로 모집했기에 동료들과 전단지와 스티커를 들고 울산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홍보했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닥치자 실직자들이 많았고, 이 일에 종사하려던 사람들도 제법 됐다. 울산퀵, 파발마 등 업체들끼리의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일 년 넘게 그 일을 했지만 겨우 용돈 버는 수준이었다. 125CC 오토바이는 출퇴근용으로 쓰거나 드라이브용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했지, 그런 무리한 운행으로 돌아다니자 1년이 지나자 폐차수준으로 망가졌다. 엔진이 도저히 버티지 못한 까닭이었다. 수리비로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때 필자의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질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50대가 넘어가면서는 매사 살얼음판 걷듯이 조심스런 행보가 되기 마련이다. 환갑 지나고 칠순이면 꿈꾸는 일을 성취하려해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과감한 도전장은 함부로 남발할 수가 없다. 필자가 발행인과 더불어 굿뉴스울산이라는 매체를 창간할 때 ‘한번 해보자’는 도전정신도 있었지만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나름의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부담을 안게 됐고, 결국 발행인 소유의 자그마한 아파트를 처분해야 빚을 정리하고 갚을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부동산 경기가 하도 바닥을 헤매고 있어 근자에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이 “빨리 아파트가 처분돼 빚 청산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필자는 또 한 번 내 나름의 작은 승부수를 던지려고 주머니 속에서 출사표를 매만지고 있다. 연말부터 서너 달 동안 출사표를 매만져 이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이 일은 영상사업단의 출범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유트브의 영상처럼 큰 자본의 투자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문을 구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을 도모하고 있다. 처음부터 영상전문가를 영입하자면 초기에 월급을 맞추어 줄 수 없어서 내가 이 영상편집까지 배워야하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이 일이 ‘맨땅에 헤딩하기’보다는 다소 수월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편집장의 일을 해오면서 자체 글·사진·동영상등의 자체 콘텐츠를 만개 가까이 블로그나 카페 같은 인터넷상에 올려두었기에 설명하기에 편하다. 조그마한 방송실이 만들어지면 울산지역의 ‘조간뉴스 브리핑’을 하고, ‘팔도사투리 코너’로 진행하고, ‘니도나도 토크쇼’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도 패셔니스타’에서 옷맵시를 자랑하고, ‘온라인 벼룩시장’에서는 한때 요긴해 구입했지만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을 싼 값에 넘기는 방송을 진행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되었다. 필자가 여태 산전수전 겪었던 일들이 밑천이 되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유무형의 자산이 되길 바란다. 새봄이다. 필자는 새로운 출발점에서 출사표를 던지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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