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현재 몸담고 있는 굿뉴스울산은 지역의 기독교계뉴스를 전하는 작은 매체이다. 7년 전 발행인과 함께 주축이 돼 창간한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신문인데 울산의 주요 관광지와 미담 기사도 같이 게재해왔다. 창간 초기 A4용지 한 장에 발행인과 편집장의 이름을 적고 논설위원과 자문위원, 기자와 후원이사 10여명의 이름을 적었다.
그 종이 한 장을 들고 이사장과 조직을 꾸려나갈 때 ‘너희 정도가 그런 일을 감당하겠는가’ 하는 조소와 애써 외면하는 몸짓을 느꼈다. 그래도 질주하는 경주마는 주변 경치를 구경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1~2년 지나고 취재현장에 들어설 때 사람들의 대우가 다른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기자수첩은 한권씩 늘어났고, 그간의 여정을 담은 책까지 발행할 수 있었다.
주간지 발행도 준비했지만 재정과 인건비가 감당 안 돼 월간지로 찍으며 컬러판 12면 30호 발행을 넘겼다.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지만 육체적인 노고 못지않게 정신적인 중압감도 상당했다. 발행인과 필자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쉬어가며 일하라”는 한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그때 과하게 신경 쓰면 육체를 파괴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뇌었다.
작은 신문이다 보니 필자의 업무는 취재현장의 기사는 물론 사진촬영과 10여분 영상까지 담아야 했다. 몸이 피곤해도 기사는 날밤을 새면서도 적으려했고, 탈고를 거친 기사에 현장사진의 자세한 해설까지 달아 홈페이지에 걸어두면 자아도취 같은 만족감과 자존감은 두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갔다. 영상은 편집할 줄 몰라 투박해도 현장감은 생생했다.
편집장의 업무를 보면서 취재와 촬영 및 광고영업까지 동시다발로 처리해야하니 업무의 중압은 두 어깨를 짓눌러 점점 키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밤새워 글 쓰며 새벽 희붐한 여명까지 닿으면 잠이 달아나버려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되곤 했다. 또 최신 정보를 구하며 여러 개의 조간신문을 탐독하다보니 차츰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었다.
필자는 업무를 보면서 특히 인터뷰가 즐거웠고, 글도 술술 풀려나와 ‘인터뷰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일인가보다’ 느끼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보면 은연중 자기자랑이 많은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몰랐다. 발행인의 모친과 잘 알던 가난한 시절의 어떤 사람은 큰 건축업자가 됐는데 자신의 안하무인을 몰랐다. 한 시간 넘는 동안 자랑을 늘어놓으며 겨우 물 한잔 대접했다.
소통하는 일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이름만대면 아는 오랜 전통의 교회 목회자는 약속한 광고비를 받는데 정말 진이 빠지게 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 출타한 그분에게 신문 발행 전 파일을 확인하라고 교회 사무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수차례 전화를 했고, 마감시간이 돼 인쇄에 들어갔다. 그리고 광고비를 받으러 갔더니 007작전을 방불케 하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전면기사로 나간 지면에 강사로 온 사람의 증명사진을 동그랗게 따로 넣지 않고 행사 사진만 10여장 기사와 편집해 나간 것이 이유였다. 또 취재요청을 하면서 작은 광고라도 후원해주면 제작비용에 보탤 텐데 수년간 부르기만 하고 일체의 금전적 지원도 없으면 부름 받은 사람의 심정이 어떠할까. 신문사는 자원봉사 단체가 아니지 않은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지난 1년간 신문발행이 멈추었으나 인터넷 판은 꾸준히 관리해왔다. 코로나 사태는 기존 삶의 질서와 시스템을 재부팅할 것인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기존 것의 존폐여부와 새로운 것의 장착여부는 각자의 몫이다. 글·사진·영상의 노하우를 전해달라는 사람들이 요청이 근자에 늘어난다. 출애굽의 모세처럼 필자는 오늘도 지팡이를 들고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