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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관 편집장 Oct 31. 2020

세밑 단상(斷想)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듯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기 어렵다. 떨어진 잎새가 애처롭다한들 나뭇가지에 다시 붙일 수 없듯이.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는 사람도 돌아서면 남이요 소 닭 쳐다보듯 관심 없던 남도 어느 순간 님이 되는 것이 저잣거리 우리 인생이다. 세밑에 돌아보아 내가 싫은 말해서 마음 아프게 한 사람 있다면 전화로라도 사과하면 좋고, 문자메시지라도 보낼 일이다.


틀어진 관계를 복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슬그머니 주소록에서 이름이 지워지도록 허락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그를 목적으로 만났는데 그는 나를 목적보다는 수단으로 여겼다면 물에 종이배가 흘러가듯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가만 내버려둘 일이다. 수차례 전화해 만난다는 약속을 해도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 당시의 진심’이라 여기고 그 또한 미련을 내려놓을 일이다.


세밑에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누렸던 시간만큼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것저것 한 번 계수해보자. 듬성듬성한 새치였는데 흰머리가 눈에 띌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더라도 아직 까만 머리털이 더 많음에 감사하자. 눈썹에조차 새치가 침입했더라도 놀라지 말고 중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에 감사할 일이다. 나도 모르게 중년의 뱃살이 나오고,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이 시큰하더라도 아직 걸어서 활보할 수 있는 발자취에 감사할 일이다.


노안으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더라도 아직 두루두루 볼 수 있음에 감사하자. 깜빡깜빡 기억이 잘 안 나서 아내에게 구박받고, 남편에게 잔소리 듣더라도 아직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까먹지 않고, 드라마 프로가 몇 날 몇 시에 하는지 안다면 족한 마음으로 여유를 부릴 일이다. 빚에 허덕여 매주 로또 복권 1등 당첨을 기도하며 구매해도 낙방하는 게 다반사지만 그래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 오늘 희망을 가질 일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기치로 쪽잠을 자며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쳤던 대우의 회장님도 올해 작고했다. 그 기업명 大宇처럼 큰 집 하나 일구는 건 일생을 걸어야하는 일이다. 두 다리 쭉 뻗고 잠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전세면 어떻고 월세면 어떠랴. 잠시 나그네길 지나가는 인생, 행인처럼 지나가는 한 평생 아닌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데 무어 그리 애달프게 목을 매랴.


인생의 허무함에 빠져 우울증에 걸리고 급기야 자진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도 올해 많았다. 특히 젊은 연예인들의 죽음은 아주 안타까웠다. 베르테르 효과처럼 잇따르는 사건도 있었는데 이유 없이 태어난 인생이 아니기에 최후의 순간을 맞기까지 포기하지 말자. 가족과 친구나 지인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그마저도 안 된다면 마지막 수단은 신의 손에 의탁하는 것이다.


생명(生命)의 뜻을 파자(破字)하면 생의 명령이다. 고로 인생은 신의 은총인 것이다. 살아가라는 하늘의 하명에 우리는 순종해야한다. 살고 싶어도 살아갈 수 없는 불치병의 환자들을 생각해보라. 불꽃이 잦아들 듯 사멸되는 것을 온몸으로 저항해도 막을 수 없을 때 그 절대절망을 무엇으로 돌이키랴. 하늘가는 밝은 길에 전능자를 의지하는 것은 목숨같이 소중한 선택이다.


나라가 좌편향정책과 포플리즘(populism)에 매몰돼 가는 것을 염려하며 간절한 기도를 상달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다시금 반전이 되도록 보수 쪽에서 치밀한 전략을 세우기를. 사람 씨앗을 심으면 30년 뒤에는 수확할 수 있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이중정책을 발휘해야한다. 지금 있는 사람들이 인재(人才)가 되도록 새출발해야한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급선무다. 정직과 헌신이 보수의 지갑에서 사라지는 날이면 끝이다.


이전 보수의 부정부패와 잘못도 많았지만 그래도 보수는 최소한 세우는 데는 능했다. 이제 나라 경제의 모든 밑천이 드러나 바닥을 보이고 있고 마이너스 경제다. 집권자는 진영논리에 매몰되기보다 거시적인 눈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요원(遙遠)한 일이다. 적확히 깨닫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10~20년 뒤면 아르헨티나 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그때 통탄과 회한의 눈물을 흘려도 그 눈물의 의미를 누가 알아주겠는가.


현재 진보주의는 권력의 단맛에 빠지는 부정부패와 자중지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각종 사태에서 보듯 과거에 남을 판단했던 근거는 자신을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 남을 예리하게 겨누는 진보주의의 칼날은 아직 멀쩡하다. 그러나 차제 칼자루는 썩어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날이면 날마다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인재(人才)가 인재(人災)로 드러나는 뉴스가 넘쳐난다.


진보진영의 논리와 잘못은 무엇인가. 그들은 빌딩(building)을 건설하지 못한다. 세우는 것보다 허무는데 익숙하다. 리빌딩한다고 하지만 헛발질이 많다. 곳간에 쌀이 쌓이기도 전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나누는데 열심이다. 판세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애쓰고 애써도 그들은 퍼주고 무너뜨리는 데는 명수(名手)인데 반해 건설하고 세우는 데는 진짜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구약시대의 요셉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하늘의 지혜를 체득(體得)했다. 이집트에 7년 대풍년이 들고 난 후 7년 대흉년을 맞을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곡식을 계속 모았다. 나중에는 쌓을 곳이 없도록 곡식이 넘쳐났다. 그래서 7년 대흉년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앞에 군사·외교·경제·복지 어느 것 하나 성한 곳 없이 무너지는 징후가 심상찮다. 부디 이 나라에 신의 가호(加護)가 깃들기를 희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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