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보다 공감

임플란트 쉽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by 운아당

나는 겁이 많다.

조금 불편한 건 그냥 참고 넘기는 쪽을 택한다.
치과는 더 그렇다.

셋째 아이를 낳고 잇몸 전체가 부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도,
나는 치과에 가지 않았다.
사흘을 굶다시피 하니 부기가 조금 가라앉았고,
그렇게 그 고비를 넘겼다.

그 후로도 윗니 아랫니가 수시로 아팠고,
의사는 발치를 권했지만
염증 치료만 하고 또 넘어갔다.


많이 아플 때는 치과 앞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병원 문은 끝내 열지 못하고,
진통제만 사서 돌아온 날들이 많았다.

육십을 넘기자
이제는 이가 여기저기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시큰거렸다.
특히 어금니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다.

이번엔 달랐다.
진통제로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고,
결국 용기를 내어 병원을 정했다.

홍보가 많았던 병원이었다.
임플란트 경험이 수만 번이고,
수상 경력도 많다 했다.
잘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 문 앞을 수없이 맴돌다가 겨우 발을 들였다.

그 병원은 나의 치아 상태를 보자마자
잇몸 치료도 없이 아래위 어금니 여덟 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설명은 간단했고, 결단을 요구하는 말투는 빨랐다.
금액도 컸지만,
사실 가장 두려웠던 건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 먹지 못하는 고통은
생각보다 깊고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오른쪽 위아래부터 시작했다.
인공뼈를 심고, 이틀을 거즈를 물며 지냈다.
얼굴이 부어 음식을 넘기기도 힘들었고
통증도 심했다.
3개월을 기다려 임플란트를 심었고,
마침내 해냈다 싶었는데,
아래쪽 하나가 신경을 눌러 마비가 왔다.

무서웠다.
결국 그 이를 다시 빼고
나는 일 년을 치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얼마 전, 또 다른 통증이 찾아왔다.
아랫니 하나가 너무 아팠다.
그제야 생각났다.
우리 동네 조용한 치과.
수십 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광고도 없고, 화려한 홍보도 없는 그곳으로 향했다.

접수하면서 잇몸이 아프고
임플란트 상담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간호사도 의사도
임플란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잇몸이 많이 약하셔서요.
스케일링 먼저 해보시죠.”

스케일링은 꼼꼼했고,
거의 한 시간을 정성 들여 해주었다.
기다리는 환자가 없으니
누군가의 속도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후, 아픈 이를 뽑았다.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나는 병원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간호사는 몇 번이고 거즈를 갈아주고
지혈제를 발라주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다녔던 병원들에서는
이런 정성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보통은 간단한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진통제 처방과 함께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 병원은 아픔이 가시기 전까지 보내지 않았다.
“아프신 부분을 먼저 치료하고, 임플란트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간호사의 말은 짧았지만 신뢰가 갔다.

요즘은 치과가 넘쳐난다.
곳곳에 현수막이 붙고, 상담실장과 고운 말투의 안내가 기다린다.
그러나 그 속에는 환자의 아픔보다 수익을 먼저 셈하는 계산이 숨어 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병원에서조차 내 고통보다
비용을 먼저 묻는 세상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괜찮으세요?”라는 따뜻한 말을 들었다.

그 말 한마디에 한참을 참아왔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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