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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역정에 개 찬 날

지리산 신안골 이야기

by 운아당

바람은 잔잔했고, 구름은 하늘을 얇게 덮고 있었다.
불 피우기 좋은 날씨였다.

마당 한편에 걸어둔 커다란 솥에
닭 세 마리와 인삼, 대추, 마늘 같은 약재를 넣고 불을 붙였다.

감기로 고생하는 사위와 손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몸이 바쁘게, 그리고 가볍게 움직였다.
불을 때는 일은 예전부터 좋아하던 일이라
즐겁게 익숙한 손길로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불이야! 형님, 다용도실에 불이 났어요!”

뒷집 동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쏜살같이 뛰어가 보니, 냄비에서 불꽃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는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가스레인지를 잠갔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기름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급히 수건으로 내리치니, 오히려 바람을 일으켜 더 불타올랐다.

순간 떠오른 기억.

"수건을 물에 적셔 덮으라."
옆에 있던 수건을 물에 적셔 덮자 불길은 순식간에 꺼졌다.

산소, 온도, 습도.
불은 이 세 가지의 균형에서 붙는다던 말이 스쳤다.
선풍기로 연기를 밀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냄비 속엔 닭에서 떼어낸 기름 덩어리와 생선 대가리가 들어 있었다.

길고양이들에게 주려고 삶던 것을 백숙 불 피우느라 깜빡 잊은 것이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밥그릇에 음식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다른 집으로 간다.
하지만 내가 자주 삶아 주다 보니 자주 오곤 했다.

남편이 말했다.
“다시는 고양이 밥 끓이지 마. 고양이 밥 끓이다가 집 다 태울 뻔했잖아.”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정말, 최근에 감자도, 고구마도
자주 태운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젠 사료만 줘야겠다.

그때, 우리 집 단골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다른 고양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듯 밥그릇만 보고 가는데,
이 아이는 밥이 없으면
내 주위를 맴돌며 야옹야옹 밥 달라고 조른다.

나는 사료를 부으며 중얼거렸다.
“이젠 사료만 줄게. 고기 끓이다가 식겁했거든.”

그 순간, 고양이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큰 눈동자에 담긴 말 없는 질문.

“왜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문제가 고양이 밥이 아니라, 내 부주의였다.
예방책을 세우면 되는 일이었다.

가스 밸브에 타이머를 달자.
불이 과열되면 자동으로 꺼지는 제품으로 바꾸자.
그리고 불을 켜놓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말자.

잘못은 나에게 있는데, 갑자기 고양이 밥을 끊겠다는 건
그야말로 ‘시어머니 역정에 개 옆구리 찬 격’이었다.

가만히 날 바라보던 고양이의 눈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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