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나에게 묻는다
세상에는 스스로 다가가려 해도 닿지 않는 것들이 있다.
깨달음도, 사람도, 장소도, 물건도, 기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모든 만남은 ‘시절인연’이 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마음속 숙제가 풀리기도 하고,
어떤 순간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걸음이 이끌려 그곳에 갔다가,
때가 되어 조용히 떠나기도 한다.
갖고 싶던 물건이 아무 예고 없이 손에 들어오고,
또는 소중히 여기던 것이 문득 깨져버리기도 한다.
기회 또한 마찬가지다.
예기치 않게 다가오고,
예고 없이 스쳐간다.
구름이 머물렀다 흩어지듯,
삶은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들로 채워지고 비워진다.
오늘도 그랬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최승호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인이었지만,
그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을 붙잡았다.
그는 말했다.
시를 쓰려면 안목과 문학적 역량, 그리고 발상이 필요하다고.
안목은 보는 눈, 좋은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길러지고,
문학적 역량은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라고.
그리고 그 ‘무엇을’이라는 말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일이 아닐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오래 시선이 머무는지,
어떤 장면 앞에서 가슴이 뛰고,
어떤 말 앞에서 침묵하게 되는지를 아는 것.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질문 앞에 자주 멈춘다.
그러나 그 답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흐릿하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또 다른 인연이 닿았다.
안도현 시인의 『안도현의 발견』이라는 책 속,
‘작가의 말’을 읽는 순간이었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흩어져 있던 내 마음의 조각들을 조용히 모아 주었다.
“아,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구나.”
나는 그 시인의 마음결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작고 나지막한 것들,
기억되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마음.
그가 말하는 ‘좋아하는 것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의 감정에 스며들었다.
그는 썼다.
'나는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햇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나뭇잎의 앞면보다는
나뭇잎 뒷면의 흐릿한 그늘을 좋아하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보다는
나 혼자 가만히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을 더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이름들을 오래 응시하고,
어루만져 보고, 귀 기울여 보고, 의미를 입혀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은
삶을 전진시키는 에너지와도 같으니까.'
그는 자기 자신을 참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그 깊이를 표현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부럽기도 했고,
그의 글을 통해 나도 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오랜 친구이자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언젠가 신작로 옆,
아무렇게나 버려진 연탄재 더미를 발로 찼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내 마음이 무지개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었고,
늘 그 무언가를 찾아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쉽게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외로움은
분노로, 무기력으로, 때로는 말로, 때로는 침묵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 연탄재를 발로 찼다.
한 번도 뜨겁게 나를 태워보지 않았으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연탄재는 어쩌면, 늘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던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인이 내 마음에 다시 불을 지핀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이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던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