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내가 사는 곳은 지리산 끝자락, 나지막한 골짜기다. 마을길을 따라 오르면 사방이 푸른 산으로 담처럼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는 단절된 작은 요새처럼 느껴진다.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리산의 이름난 봉우리들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마을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작은 정원이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날 아침도 늘 그렇듯, 부스스 눈을 뜨자마자 마당으로 나갔다. 밤사이 세찬 비가 지나간 뒤, 아직 가랑비가 남아 있었고, 나는 앞산을 바라보며 몸을 풀고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때였다. 코끝을 찌르는 역한 냄새가 훅 밀려왔다. 더 이상 들이마시면 어지러울 것 같은 매스꺼움에 코를 벌름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앞집 마당에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것을 보았다. 벌겋게 피어오르는 불길 위로, 거뭇한 연기가 굵고 뚜렷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유별나게 강하다. 공기 좋고 산새 소리 들리는 이곳이 좋아 이사 왔고, 풀냄새 한 줌도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쓰레기를 태우는 일에 특히 민감하다. 종이 한 장도 태우지 않고 꼼꼼히 분리수거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소금기를 빼 퇴비 더미에 부엽토와 섞어 2년을 묵혔다가 밑거름으로 쓴다. 그렇게 만든 흙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유난히 건강하고 싱그럽다.
그런 내가 지금, 바로 코앞에서 검은 연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기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앞집에 사는 형님 댁이다. 산청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분, 나보다 훨씬 오래 이 마을을 지켜온 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 말 없이 넘기기엔 내 기준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지적하자니 가족 사이의 정이 상할까 걱정되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엉키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랫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로, 내가 이사 왔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자네 집에서 뭐 태우나? 냄새가 여기까지 올라와. 동네 사람들 신고하겠다고 난리야.”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빨라졌다.
“어, 아니야. 방에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바로 나가볼게. 일단 신고는 좀 말려줘.”
숨이 헐떡거렸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는 바로 마당을 가로질러 형님 댁으로 향했다.
아주버님이 놀란 얼굴로 급히 마중 나왔다. 형님은 무슨 일이냐며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곧장 말했다.
“형님, 지금 뭐 태우시는 거예요? 연기가 너무 심해서 동네 사람들이 난리예요. 전화가 여기저기서 오고, 신고한다고 해서 제가 겨우 말렸어요. 이건 너무 심해요.”
형님은 말없이 물을 퍼다 불을 껐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나도 순간적으로 말이 다소 거칠게 나간 것을 느꼈고,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레 말했다.
“형님, 이런 건 태우시면 안 돼요. 저희 집에 파란 마대 있는데 하나 드릴까요?”
그때 형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리치료하던 매트가 더러워서 내놨더니 이 양반이 그냥 불을 붙여버렸어. 안 해야 되는 건 안 해야지.”
나는 웃으며 덧붙였다.
“면사무소에 가면 딱지 하나 사는 데 오천 원밖에 안 해요. 제가 사다 드릴게요. 신고 당하면 벌금이 30만 원이에요.”
그때 형님이 약간 기분이 상한 듯 말했다. “비 오는 날은 원래 태우기 좋은 날이고, 옛날부터 다 태웠는데, 그깟 거 좀 태우면 어때.”
형님 내외는 수십 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다. 예전에는 버릴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을 심고, 먹고 남은 것은 땅으로 돌려보냈다. 종이도, 플라스틱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밭에 비닐을 깔고,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그 비닐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된다. 농약병, 비료 포대, 포장재… 어느새 농촌에도 도시 못지않은 쓰레기가 생긴다.
문제는, 도시에서는 태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이 넓으니 괜찮다고, 예전에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건 습관의 힘이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달라지지 않는다.
가끔 궁금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어르신들께 슬쩍 여쭤보면 대답은 늘 모호하고 애매했다. 대체로 자신들이 해오던 방식대로, 조용히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흐린 날이면 가끔 코끝을 스치는 불쾌한 냄새가 있다. 짐작은 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마을 어귀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하나 있다. 하지만 집과 너무 멀어 접근하기 쉽지 않다. 혼자 사는 노인, 차가 없는 사람, 기동이 불편한 이들은 그곳까지 가기 어렵다.
결국 태우거나, 타지 않는 것은 마당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자녀들이 올 때 가져간다. 기동성은 시골에서 가장 큰 현실적 문제다. 게다가, 어르신들의 경제적 여건은 넉넉하지 않다. 쓰레기봉투 하나도 아까워서 망설인다.
썩는 것은 땅에 묻으면 된다지만, 썩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수거해 가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쓰레기봉투만이라도 무상으로 지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예산이 크게 드는 일도 아니고, 그로 인해 마을은 훨씬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결국 세 가지다. 사람들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인식, 버리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 경제적 여건.
지자체에서 분리수거장을 더 가까이 설치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교육을 꾸준히 하며, 쓰레기봉투를 무상으로 배부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
그날 검은 연기와 함께 마음의 갈등도 있었지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한 발씩 물러서자 금세 정리가 되었다. 자연을 지키는 일은 단지 규칙을 따르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