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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를 짓누르던 것들

by 운아당

그날은 추석이었다.

시댁 오 형제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엌에서는 마지막 음식 준비가 한창이었고,
남자들은 마루에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웃음과 이야기로 가득하던 그 시간,
문득 시아버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아요, 니는 아들 안 낳을기가.
나 같으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아들 낳아 오겄다.
논 팔아 줄 테니 밖에 나가서라도 아들 하나 낳아 오너라.
딸 둘 낳았다고 손 놓고 있으면 우짜노.”


그 말은 마루를 가로질러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꾹꾹 눌러 참고 있던 감정이 삐걱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있었고,
그 울림은 부엌에 있더 나에게 까지 크게 들렸다.


시아버님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지만,
손주는 모두 손녀, 단 한 명의 손자도 없었다.
그는 “손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족보는 없다”고 말했고,
손자를 낳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장남은 딸 넷,
차남은 딸 둘을 낳고 더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다.
셋째인 나는 딸 둘을 낳고도 일곱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으니,
시아버님의 조급함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 순간, 가슴 한편 움츠러 있던 마음이 터질 듯 요동쳤다.
가장 서운했던 것은 남편이었다.
그 말 앞에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던 남편.
그 침묵이 원망스러웠다.


“아버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절,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들의 마음에는
늘 말없이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가족 모임이든 친정 방문이든,
어디서든 ‘아들’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일할 때,
딸만 둘인 여선생님과 함께
‘아들 낳는 법’을 비밀 이야기 나누듯 했다.
산성 체질, 알칼리 체질, 배란일 계산, 대구의 용한 한약방...
이야기들은 과학도, 미신도 아닌
불안과 바램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으며,
자나 깨나 곪아가는 마음을 껴안고 살았다.
누군가 무심히 그 상처를 툭 건드리면
그날은 온종일 먹먹했다.


내 친구 순이도 그 고민 속에 있었다.
딸 둘에 셋째를 임신한 그녀는
아들일까, 딸일까 두려워 떨었다.
시아버지는 “씨앗을 봐서라도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했고,
순이는 망설이다 내게 물었다.


“낳아야 할까? 아니면…”


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부부의 생년월일과 임신한 해를 더해 9로 나눈 뒤,
나머지가 홀수면 아들, 짝수면 딸이라는 계산법.
계산 결과는 홀수였다.


“아들이네. 낳아.”


그렇게 믿고 낳았지만, 아이는 딸이었다.
산후조리도 채 끝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시아버지의 실망과 차가운 말 앞에 울음을 삼켰고,
나는 그 앞에서 같이 울었다.


“미안해, 순아. 내가 너무 쉽게 말했어…”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친구는 그 딸을 낳은 걸 감사해한다.
막내딸이 시부모를 모시며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그때 네가 아들이라 해서 낳은 아이야.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


시아버님의 간절한 압박이 통했을까.
그 이듬해, 나는 아들을 낳았다.
그 소식에 시댁은 축제처럼 떠들썩했고,
평소 말이 없던 시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웃었다.
시아버지는 술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이제 족보 만들어도 되겠다.”


나는 그 모든 소란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들 틈에서
내 마음 한 켠에는
묘한 감정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안도였는지, 허망함이었는지…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 아이는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는 믿음.
그 신념은 너무나 절실했다.
때로는 목숨처럼 소중했고,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변했다.

결혼은 선택이 되었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아졌다.
시부모들은 손자 대신 며느리의 마음을 먼저 살피며
“그냥 싸우지 말고 너희만 잘 살아라”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들을 낳지 못해 조바심 내며 보낸 시간들,
그 감정들과 쏟아낸 에너지들이 한없이 아깝게 느껴진다.


세상은, 수백 년 지켜온 신념조차 단숨에 무너지는 중이다.

사람들이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웠고,
때로는 정체성까지 흔들렸다.


그 시절,
내 마음 한가운데
그 불합리를 꿰뚫을 눈이 있었더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밤을 새워 고민하던 날들이
이제는 구름처럼 흩어져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우리는 변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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