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벼운 결정
그날은 추석이었다. 시댁 오 형제 가족이 모두 모였다. 음식 장만도 거의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남자들은 마루에 앉아서 술 한잔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칠순의 시아버님이 큰소리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요, 니는 아들 안 낳을기가. 나 같으면 지금이라도 나가서 아들 낳아 오겄다. 시골 논 팔아 줄 거니까 밖에 나가서라도 아들 하나 낳아 오너라. 아들 낳을 때까지 낳아 봐야지, 딸 둘 낳았다고 손 놓고 있으면 우짜노."
시아버님은 꾹 참다가 한 말인지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고, 얼마나 소리가 컸으면 부엌에 있던 나에게까지 다 들렸다.
그 당시 우리 시댁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들이 손녀만 여덟을 낳고 손자가 없었다. 시아버님은 "우리 집안에 손자가 있을 때까지 족보 못 만든다."라며 종중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어느 며느리든지 먼저 손자 낳는 아들에게 집을 물려주겠다고 유산약속도 했다.
제일 큰 형님이 딸만 네 명을 낳았고, 둘째는 딸 둘을 수술을 해서 낳아 더 이상 못 낳는다고 선언했다. 셋째인 내가 딸을 둘 낳아 놓고 7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 갑갑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드러날까 조바심 내던 일이 터진 것처럼 내심 화들짝 놀랐다. 더구나 시아버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아버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는 혼자 집으로 왔다.
그 당시 아들 못 낳은 여자는 고민이 많았다. 부부 모임을 가거나, 집안 행사에 참여하거나, 친정 부모님을 만날 때면 여지없이 아들 이야기가 나왔다.
초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던 때였는데 딸만 둘 있는 여선생님과 시간만 나면 아들 낳은 방법을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시도해 본 것들의 경험담도 나누곤 했다. 남자 체질은 산성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고, 여자는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야채 위주 식단을 해야 한다는 둥, 배란기를 맞추어 잠자리해야 한다는 둥, 대구 어디에 용한 한약을 먹으라는 둥 참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니 나도 자나 깨나 곪은 상처 안고 있듯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픈 곳을 쥐어박으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내 친구 순이는 딸 둘을 낳고 임신하여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순이도 시아버지로부터 "씨앗을 봐서라도 아들을 낳아 집안 대를 이어야 한다."라는 호령을 들은 터다. 낳아야 하나, 중절 수술을 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다. 나는 그 당시 유행했던 아들, 딸 구별법으로 맞춰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부부의 생년, 월, 일과 임신한 년도, 월을 모두 더해서 9로 나누어 나머지가 홀수면 아들이고, 짝수면 딸로 보면 된다."
이 보다 더 간단한 구별법이 있을까. 어쨌든 나는 친구의 정보를 물어서 셈을 하니 홀수가 나왔다. 정확도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 계산을 다시 했다. 홀수였다.
"아들이네. 낳아라."
친구는 아들이라 믿고 순산했다. 그러나 딸이었다. 그녀의 시아버님은 산후조리도 안 한 며느리에게 실망의 눈총이 심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그 친구는 울면서 딸이라 서운하고, 산모에게 모질게 하는 시아버님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나는 오지랖이 넓어서 말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친구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요즘 친구는 아들인 줄 알고 낳았던 막내딸이 사위와 함께 옆에 살면서 효도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그 친구를 만나면 막내딸을 낳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막내딸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시아버님의 채근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다음 해 나는 막내아들을 낳았다. 그 시절 그렇게 절실했던 우리의 신념들, 나이가 들면 꼭 결혼해야 하고,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그런 것들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 청년들이 많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다. 한 자녀만 낳아도 시어른들은 아무 말 안 한다. 오히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싸우지 말고 너희만 잘살아라'가 시부모님의 바램이다.
그때 아들 낳지 못해 애태우고 가슴 졸이고, 숨죽이던 수많은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가 아깝다. 요즘 유사 이래 수백 년간 지켜오던 사회적 신념이나 통념, 관습이 송두리째 뽑혀나가고, 개인이 진리라 믿고 목숨 걸고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내 마음 중심에 불합리한 문제에 대한 본질을 성찰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잠 못 이루고 애를 태우던 그 시절 고민이 어느새 구름이 흩어지듯 허공 속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의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