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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지금 우리 시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by 운아당

1929년생. 올해로 아흔여섯.
우리 어머니와 같은 나이입니다.

대한민국이 독립된 해가 1945년이니,
그 어르신은 나라가 무너지던 혼란의 시기에 태어나셨겠지요.
정치도, 세계 정세도, 관심 둘 겨를 없던 시절.
그저 평범하게, 굶지 않고 아이들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조차,
역사의 거센 파도 앞에 너무 쉽게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럽게 터진 6.25 전쟁.
온 나라가 불에 타고,
형제가 형제를 향해 총을 겨누던 피의 시간.
그 속에서 어른들은
벌거벗은 세상 속에서도
오직 하나, 자식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만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독일로 광부와 간호사로 떠나,
낯선 땅에서 말도, 사람도, 공기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땀과 고통을 견디며 일했습니다.
그 월급은 따박따박 고국의 부모, 형제, 자식에게로 보내졌습니다.
그 덕분에,
내일 먹을 것도 막막했던 많은 가족들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전쟁.
이번엔 월남이었습니다.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목숨을 걸고 총을 들었습니다.
총알을 피해, 총알을 쏘고, 살아남았습니다.
그 피로 번 돈으로,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집세를 내고, 겨울을 났습니다.

한 나라가 왕조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험난한 열두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는
지금 ‘노인’이라 불리는 어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민주화 투쟁, 산업화의 격동기.
그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입니다.
한 번도 쉽게 살아본 적 없고,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는 세대입니다.

그렇게 달려오다 보니,
무릎에 힘은 빠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이제는 바르게 서서 걷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그 어른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아들, 딸의 따뜻한 존경.
손자, 손녀의 웃음소리.
그리고 편안한 노후.
그뿐입니다.

지나온 고생 다 잊고,
“그땐 참 힘들었지만,
이제 너희가 잘 살아줘서,
죽어도 여한 없다”
이 한마디 할 수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호사,
이 편리함, 이 평화와 자유는
그저 ‘시간이 지나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울며 참으며,
자신의 청춘을 바쳐,
우리를 위해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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