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속았다. 강이 흐르고 있어 더 도드랐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활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있던 나는 강물 주름에 수많은 이야기가 쓰여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꿈 많던 소녀시절, 가보지도 않은 프랑스의 세느강이 얼마나 고즈넉하고 낭만적 이미지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실제의 세느강은 그렇게 깨끗하지도 낭만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진주에는 남강이 유유히 흐르고 물 위에 천둥오리, 검정오리, 원앙새들이 노닐고 있다. 강변을 산책하다가 놀라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
강 건너 새로 지은 아파트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신고를 해야겠다며 자세히 보니 아파트가 서향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인지라 서쪽으로 난 창문이 많았다. 이 창문에 석양이 비쳐 강렬한 불이 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뱀의 혀 같은 불길이 창문 밖으로 치솟아 나온 것처럼 보였다. 정말 대형화재가 난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속 불길은 더욱 실감 났다. 이렇게 우리 눈을 착각하게 만들다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만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에 어떤 새로운 지혜를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우리 눈은 정말 착각 속에 산다. 아니 우리 뇌가 수많은 착각을 일으키며 산다.
저 벌건 불길의 색깔도 저 물질의 본질이 아니지. 실제는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고, 가시광선의 진동수가 작을수록 빨간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인 줄 착각하고 왈가왈부하지만 우주 만물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내가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