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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Jan 27. 2024

김치, 정이다

김치는 음식이 아니다. 정이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김장 김치를 담가 막내 동생에게 보냈다.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가워하고 고마워하고, 크게 의미를 부여해서 약간 놀랐다. 그렇게 기뻐하고 감동할 일인가. 그동안 나는 시어머니가 매년 김치를 비롯해서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가 주었기에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퇴직을 하고 시간이 나자 3년 전 멸치액젓 3통을 사서 그늘에 두었다. 푹 익혀서 액젓을 걸러 김치를 맛있게 담아보리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초겨울이 다가오면 엄두가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김장을 해서 한 두 포기 갖다 주고 딸아이 사돈이 몇 포기 주면 금방 한 통이 차버렸다. 김치를 스스로 담가보겠다는 결심은 이것을 핑계 삼아 미루어졌다. 김장하기는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 아직 숙제를 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막내 여동생은 김치를 사 먹는다고 했다. 대학생 아들, 딸이 김치를 좋아하여 많이 먹는데 몸이 약해 직접 담그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큰 언니가 친정엄마처럼 해줘서 잘 먹었다고. 지금 큰언니가 아파서 해주지 못하니 그동안 큰 언니가 참 고마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기필코 이번에는 김치를 해서 막냇동생에게 줘야겠다, 친정엄마가 못하고 큰언니가 할 수 없게 된 지금 내가 친정의 애틋한 정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로 지식을 습득하고 이웃 형님들에게도 들어서 이론으로는 훤했다. 김치는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해서 배추 속에 넣는 것이다. ‘풍경이 보이는 것과 실제 걷는 것은 다르다’는 말처럼 말과 글은 간단하다. 직접 김장을 하는 것은 안 아프던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힘들다. 배추를 잘라서 소금물에 절이는 것부터 어려웠다. 너무 짜도 안 되고, 너무 싱거워도 물이 생겨 맛이 없고 잘 쉰다. 양념은 젓갈과 각종 야채들이 10여 가지는 더 들어간다. 가사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남편도 돕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왜 하는가? 아까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냥 사 먹으면 편한데.


거부할 수 없는 빠른 세상이다. 그 바쁜 와중에 가장 패스된 것이 음식인 듯하다. 맞벌이 주부가 직장 생활 8시간을 빼버리면 하루의 시간을 얼마나 날개를 파닥거리며 살았겠는가, 아이 셋 육아만 해도 숨이 찼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뒷전이었다. 조리가 쉽고 빨리 먹고 치울 수 있는 것에 시선이 갔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했을 때 나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후딱 먹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패스트푸드는 우리 자신을 패스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소중한 자신을 푸대접하다니. 부질없이 뭐 하느라 종종걸음을 쳤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천천히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들과 밥상머리에서 먹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족 간의 정이 쌓이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김치를 담그는데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나누면서 큰 기쁨과 감동과 자매 간 정을 느끼게 되었다. 김치가 익을수록 우리의 정도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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