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음식이 아니다. 정이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김장 김치를 담가 막내 동생에게 보냈다.
놀랍게도, 그 어떤 선물보다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며 큰 의미를 두는 동생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이토록 감동할 일이었나.
나는 늘 시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김치며 된장, 고추장 덕에 아무 걱정 없이 지냈다.
그 따뜻한 수고와 정성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퇴직 후 시간이 생기자, 언젠가는 내가 직접 김치를 담가 보리라 마음먹고 멸치액젓 세 통을 사서 그늘에 뒀다.
푹 익힌 액젓으로 김치를 담가야지, 생각은 했지만 초겨울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주저했다.
이웃이나 딸아이 사돈이 한두 포기 나누어 주면 금세 김치통이 차버렸다.
‘괜찮아, 올해도 그냥 넘어가자’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아직 숙제를 마치지 못한 아이처럼 김장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막내 여동생은 요즘 김치를 사 먹는다고 했다.
대학생 자녀들이 김치를 좋아하지만, 본인은 몸이 약해 담그지 못한다고.
그동안 큰언니가 친정엄마처럼 김치를 해줬다며, 이제 언니가 아파 할 수 없게 되니
그동안의 고마움이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음을 굳혔다.
이젠 내가 해야 할 차례다.
친정엄마도, 큰언니도 못 하는 지금
이 따뜻한 정을, 내가 이어야겠다고.
유튜브로 레시피를 익히고, 이웃 형님들에게 조언도 들었다.
이론으론 충분했다.
하지만 말과 실제는 너무도 달랐다.
‘풍경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의 차이처럼.
배추를 절이는 일부터 허리를 숙인 채 신경을 써야 했다.
짠맛도 싱거움도 조심해야 했다.
양념은 젓갈과 수십 가지 야채들이 어우러져야 맛이 난다.
그동안 가사일은 내 일이라 여기지 않던 남편도 결국 함께 도와주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을
왜 하는 걸까.
돈 주고 사 먹으면 간단하고 편할 텐데.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바쁜 세상, 쫓기듯 살아가며 가장 먼저 포기해 온 게 음식이었다는 걸.
맞벌이하며 아이 키우고, 자기 계발까지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정성’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빠르고 간단한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빠름 속에서
우리는 자꾸 ‘나’를 잃어가고 있진 않을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 자신이다.
음식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내 몸을, 마음을, 그리고 관계를 이어주는 따뜻한 고리이다.
천천히,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가족과 둘러앉아 나누는 밥상은
말 없이도 정을 전하고, 유대감을 깊게 만든다.
그 따뜻한 기운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김치를 담그며 허리는 아팠지만,
막냇동생의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은 뭉클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나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김치가 익어간다.
시간을 들여야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정도 천천히, 따뜻하게,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