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참 좋다. 미세먼지도 없고, 온화한 공기가 봄날처럼 마음을 풀어준다.
습관처럼 걷는 산책길은 늘 남강변이다. 오늘도 강물이 풍성히 흐른다. 진양호 댐에서 물을 흘려보낸 덕인지, 오리 떼들이 무리 지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평화롭다. 남강을 따라 펼쳐진 망경산과 칠봉산의 풍경도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기암괴석은 아니지만, 깎아지른 산세와 흐르는 물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나는 익숙함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새로운 곳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시장도, 가게도, 만나는 사람도, 산책길마저도 늘 같고 익숙한 곳이다.
며칠 전,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글을 쓰며 그런 내 모습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해파랑길도, 산티아고도 걷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책을 만지며 그 내용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내 상상만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의도적으로 낯선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 진주성.
너무 가까이 있어서 외면했던 곳이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그곳을, 정작 진주에 사는 나는 좀처럼 찾지 않았다.
진주성 서문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오르자 호국사가 나왔다.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절이었다. 오늘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경내를 돌았다. 안내문을 읽으며 놀랐다. 이 절은 고려 시대에 일본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불교 전파가 아니라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단다. 호국을 위해 존재했던 절.
임진왜란 때 전사한 승병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도 내성사에서 '호국사'로 바뀌었다 한다.
촉석루는 진주성의 상징이다. 강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세워졌다는 의미에서 ‘촉석루’라 불린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났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김시민 장군과 3,800명의 군사, 그리고 백성들이 왜군 3만 명을 막아냈던 1592년의 진주대첩.
그러나 그 다음 해에는 왜군 9만 명이 쳐들어왔고, 7만 명의 민·관·군이 순절했다.
기생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촉석루에서 몸을 던진 것도 이때다.
진주성 안에는 촉석루와 의암 외에도 영남포정사, 북장대, 서장대, 의기사, 쌍충사적비, 호국종각 등 충절의 역사가 고요히 숨 쉬고 있다. 그 사이를 걸으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껏 나는 이 성을 단지 '논개가 순국한 곳'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60년 넘게 진주에 살면서도, 진주성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다.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족은? 친구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부대끼며 살아도, 혹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수박 겉핥기처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소중한 것들은 늘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먼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앞의 햇살보다 더 눈부신 빛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오늘처럼 낯익은 곳을 낯설게 걸어보는 하루는 말해준다.
진짜 빛나는 건, 늘 곁에 있었던 것들이라고.
가까이 있는 것을 알고, 느끼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