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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Feb 13. 2024

가지 않던 길도 가보자

남강변 말고 진주성으로 산책을 나섰다

햇살이 참 좋다. 미세먼지도 없고 온화한 날씨가 봄날 같다. 관성의 법칙처럼 늘 다니는 산책로는 남강변이다. 강물이 넘실거리며 흐르는 날에는 마음이 풍성하여져서 흡족하다. 진양호 댐에서 물을 충분히 흘러 보내어 오리 떼들이 무리 지어 헤엄쳐 다니는 모습이 평화롭다. 남강 물줄기 따라 망경산, 칠봉산이 있는 서진주 방면은 경치가 참 아름답다. 기암괴석은 아닐지라도 깎아지른 산세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나는 새로운 곳보다는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습관처럼 시장도 늘 다니던 길로 가고, 늘 가던 가게에 가고, 늘 만나는 사람 만나고, 산책도 늘 가는 길로 발걸음이 저절로 가게 된다. 그것을 '나는 어떤 사람인가'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달았다.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세계여행부터 해파랑길, 서해랑길, 남파랑길, 산티아고 등 수많은 걷기에 동참하고 있었기에 나는 상당히 낯선 곳을 용감하게 잘 가는 사람이고 도전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책을 늘 만지는 사람이 자신이 그 책 내용을 안다고 착각한다더니 비슷한 현상인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의도적으로 산책 코스를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집에서 10여 분만 가면 되는 진주성이다. 항상 가까이 있어서 가지 않은 곳이 진주성이다. 외국인 방문객도 많고 국내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오히려 진주에 사는 나는 진주성을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몰랐었다.

진주성 서문 쪽에 있는 호국사

 진주성에 들어가려면 문이 세 개가 있다. 우리 집 가까이 진주성의 서문이다. 서문 입구에서 진주성 팸플릿 한 부를 집어 들었다. 계단 따라 올라오면 호국사가 있다. 평소 그저 스쳐 지나갔었는데 경내로 들어가 한 바퀴 돌면서 호국사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이 절은 고려 때 처음 세울 때부터 일본 왜구들의 칩입을 막고자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는 것이 특이하다.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군사용을 세웠다니. 처음에 내성사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라 이름 바꾸었다 한다.

서장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남강 풍경(진주 평거동 남강 풍경)


까치들이 나무 끝에 앉아 봄을 부르고 있다.
진주성 촉석루

진주성하면 촉석루와 논개이다. 촉석루는 하륜의 [촉석루기]에 따르면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지은 까닭'에 촉석루라 했다 한다.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누각이다. 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 본부이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시인묵객의 풍류를 즐기던 명소이고,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이기도 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 대첩인 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현장이자,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였다. 1592년 10월 김시민과 3,800명의 군사와 민초들의 힘으로 왜군 3만 명을 무찌른 진주대첩이다.  그다음 해 왜군 9만 명이 쳐들어와 7만 명의 민관군이 순절한 충절의 애달픈 장소이다. 이때 기생이었던 논개도 왜장을 끌어안고 바위에서 뛰어내려 순국하였다.

촉석루에서 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국한 의암으로 내려가는 길
의암
청명한 하늘에 진주성에서 순국한 애국민들의 얼이 오롯이 솔방울로 맺힌 듯하다
1915년 진주성과 남강의 배다리 모습
1910년대 진주성 내 사람들 생활 모습

진주성 내에는 영남의 행정을 보던 영남포정사, 지휘소였던 북장대, 서장대가 있다. 논개 사당인 의기사, 의병 제말, 제홍록의 쌍충사적비,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 종각 등 호국 충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진주성을 산책하면서 임진왜란의 절박한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가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진주에 60여 년을 살았는데 진주성에 대해 대충대충 알고 있다니. 그저 진주성하면 촉석루와 논개의 의암이 있는 곳으로만 흘려듣고 지나쳤다. 새삼 내 인생에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 마음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함께 살 부대끼며 살고 있지만 수박 겉핥기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소중한 것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데, 늘 시선은 먼 곳에서 무지개를 찾고 있지는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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