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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선, 여긴 어떤 곳이야?

나의 삶 하이라이트 5.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날이었나

by 운아당

무용 선생이 나를 보고 안면이 있다고 했다. 혹시 K여고를 나오지 않았냐 해서 그렇다고 하니 몇 회냐 물었다. 알고 보니 우린 여고 동창생이었다. 문학회 친구가 나이 들어가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자기가 배우는 한국무용을 같이 하자고 권했다. 나에게 무용이라니,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의 옷 같이 생각되어 거절했다. 친구는 자신도 완전 처음 접해봤지만 해보니까 좋더라며 수차례 권했다.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 무용을 배워 보겠다고 신입생 환영 자리에 나갔다. 그곳에서 무용 선생인 동창생을 만난 것이다. 오십 년이 훌쩍 지났으니 못 알아볼 만도 했다.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이름을 물으니 김영미라고 했다. 이름을 들으니 바로 무용하던 김영미를 생각해 냈다. 무용특기생으로 들어온 6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모두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 생겼다. 피부도 뽀얀 것이 가정 형편도 좋아 보였고, 일반학생하고는 확연히 차이가 났었다. 그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녔다. 그들은 무용연습하느라 수업에 빠지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히 우리들하고는 어울리지 못했다. 이름을 듣고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났다. 그녀도 내 얼굴을 보니 옛 모습이 나온다며 반가워했다.


여고시절, 여성스럽고 귀엽고 예쁘게 단장하는 같은 일은 나에게 익숙하지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꾸며서 예쁘게 보이고 뭔가를 다듬어서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하는 것은 거짓인 듯해서 편하지 않다. 실제는 실제대로,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한국 무용이라 하면 예쁘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올리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무대에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에는 무용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면아이는 늘 열심히 해야 한다. 강해야 한다. 서둘러라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다. 뭔가 실용적인 일이 의미 있는 일이고, 노는 일은 지극히 하찮은 일로 새겨져 있다. 엄마는 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말했다.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

교회에서는 늘 성도들에게 말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게으름은 죄악이다."


철학자 김형석은 인생이 60부터가 가장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새로운 배움도 75세 까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헬스장에서 70대 넘은 여자가 운동을 해서 보디빌드 대회에 나온 것도 봤다. 일본의 90대 할머니는 시를 배워 동시집을 발간했다고 들었다. 나이를 들어 시도하지 않으면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무의식과 본능에서 떠오르는 갖가지 부정적 생각들을 역행하여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새로운 일에 일단 한 발자국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제 나에게 금지구역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도전해보고 싶다. 여고시절, 하얀 교복을 입고 하늘의 구름 위에 마음 띄워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시절의 마음을 끄집어내고 싶다. 소풍온 지구별에서 맘껏 놀고 싶다. 오늘은 나에게 금지된 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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