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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중 복병은

나의 삶 하이라이트, 푯대를 향하여 달리다가 넘어지면 어떡하나요

by 운아당

전주 '햇살 가득'이라는 한옥 집 앞에는 어릴 적 물 길러 올리던 두레박이 걸려 있어 반가움을 더했다. 배정받은 방은 물망초라고 이름 붙여진 방,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이는 곳이었다. 한지로 바른 문은 바깥에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리며 새소리가 다 들렸다. 옛날 나 어릴 적 살던 집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까칠한 객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포근한 느낌이 온몸과 마음을 감싸 안았다. 이 집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이번 5일간의 여행이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남편과 나,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하는 이번 여행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요양보호사를 준비하였는데 시험 응시 지역이 전북 전주밖에 남아있지 않아 신청하게 되었다. 전주는 첫걸음이고 변산반도 쪽으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전주 한옥마을을 기점으로 부여, 공주, 부안, 광주, 순천을 거쳐 돌아오기로 하였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1일 1쪽 매일 100일간 올리기로 약속하였기에 여행을 하는 기간 동안이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많이 걷는 여정이라 피곤할 것이고 글쓰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여행기를 써보자 하고 태블릿 PC를 챙겨갔다. 첫날 전주 한옥마을과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곳이라는 경기전, 천주교 최초의 순교지인 정동성당을 둘러보고 푸근한 마음으로 숙소로 들어왔다.


따뜻한 온돌에 앉아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태블릿 충전기를 꽂으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갑자기 천장이 핑그르르 돌았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이석증 경험이 있기에 또 돌이 떨어졌나 보다 하고 가만히 누워서 이 어지러움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빙글빙글 도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이 무리였을까. 이런 일이 여행지에서 일어나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다시 앉아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룻밤 더 자고 상태를 보자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 아침, 나는 여전히 머리가 멍 했으나 경미한 어지러움이었기에 계획대로 부여 여행을 진행했다. 역사책에서만 읽었던 부소산성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부여의 국립박물관에서 백제 문화의 정수인 백제금동대향로를 보았다. 그의 화려하면서 섬세한 표현과 풍류에 감탄했다. 이렇게 다행히 하루 일정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공주로 갔다. 그런데 불안 불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숙소에서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나는 목욕탕 바닥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는데 세상이 흔들리고 빙그르르 돌았다. 딸이 급하게 나를 침대로 옮겨주어 어지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번 여행은 무리일까, 아니면 여행을 중단하고 가야 하나, 걷지도 못하는데 병원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셋째 날, 아침 일찍 공주 시내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귀의 세반고리관에서 돌이 떨어져서 어지러운데 곧 낫는다고 했다. 5일 정도는 고개를 급하게 숙이거나 돌리거나 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다. 그냥 될 대로 돼라 급하면 응급실 가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공주를 왔으니 아름다운 무령왕릉의 유물들을 꼭 보고 싶어 공주박물관을 찾았다. 오후에는 부안의 내소사에 방문하였다. 이제 글을 쓰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내 몸 상태 잘 살펴가면서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 만을 기원했다.


넷째 날, 이번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변산반도 부안의 서해랑길 47번 코스를 걸었다. 비가 부슬부슬 왔다. 코스는 4시간 정도로 크게 부담되지 않는 거리이다. 붉은색을 띤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 적벽강은 이색적이다. 날씨도 점점 싸늘해지고 비는 추적추적 왔지만 목표지점인 성천항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가벼웠다. 원지점인 격포해수욕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9분 만에 도착했다. 이동하여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섯째 날, 광주 박물관에서 도자기 전시관을 관람하였다. 700년 전 과거로의 여행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그때 갑자기 소설 '700년 전의 약속'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저자는 나의 글쓰기 선생님이신 이진숙작가님이었다. 전시된 도자기들이 신안군 증도에서 침몰된 배에서 나온 해저보물을 인양한 것이라고 했는데 작가님의 소설의 배경과 일치했다. 나는 책을 읽고 증도에 방문하기도 했었는데 광주박물관에서 그 유물들을 접하고 소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순천 송광사를 들러 경내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건강이 걱정이 되었지만 무사히 5일간의 여행을 마쳤다. 오랜만에 남편, 딸과 함께 여행하고 고생을 같이 하며 나눈 마음이 여전히 따뜻하다. 하지만 글쓰기 약속을 5일 미루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글쓰기를 5일간 이탈하였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고 나는 푯대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살 것이라 계획하지만 삶의 복병은 언제나 나타난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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