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 민아와는 늘 붙어 다녔다. 13년 정도를 한집에 사는 쌍둥이처럼 지냈다. 우리가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 민아는 미국 사는 언니가 공부시켜 주겠다고 해서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고모집으로 가서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진해로 가면서 헤어졌다.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언젠가 민아가 울면서 우리 집에 왔다. 윗동네 남자아이가 때렸다는 것이다. 엄마 심부름으로 윗동네 갔다 오는 길에 그 남자아이를 만났는데 길을 막더라고 한다. 길 위에 돌로 줄을 그으면서 자기 동네 지나가지 말라고 하더란다. 민아가 그냥 지나왔더니 발로 차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 남자아이는 우리보다 한 살 많았다. 나는 우리 골목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우리 집으로 모이라고 했다. 우리 골목에만 열댓 명의 내 또래아이들이 있었다. 민아가 맞은 이야기를 하고는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우리 골목의 단합된 힘으로 그 나쁜 사내아이를 혼내주자고 했다.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다. 내가 그렇게 친구들을 소집한 것은 내 마음속에 나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있었다. 길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것인데 길을 막은 것은 명백한 나쁜 행동이고, 힘 있는 사내아이라고 약한 여자아이를 때린 것은 여자를 우습게 본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나쁜 사람을 혼내는 일은 정당한 일이고, 나 혼자는 힘이 약하니 힘을 합해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우리 골목 친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원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어릴 적 친구가 하는 말이 '문 밖에서 네가 빨리 나온나 해서 밥솥에 불 때다가 부지깽이를 집어던지고 뛰어나가는 바람에 그날 밥이 설익어서 엄마에게 혼났었지.'라고 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지금의 나와 영판 다른 성격의 나라서 조금 낯설다.
우리는 그 아이 집으로 찾아갔다.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한길 가로 나오니 그 남자아이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먼저 오늘 민아를 때린 일을 따졌다.
"길이 니끼가(너의 것이냐), 니가 뭔데 못 가게 하노. 그라고 왜 민아를 때리노."
"니가 뭔데 끼어드노, 꺼져라."
그 남자아이는 제법 덩치가 있었다. 나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하지만 입으로 먼저 몰아 붙였다.
"너거 집앞 길 시멘트 포장을 우리 아버지가 새마을 사업으로 만든건데 니가 와 주인 행세하고 난리고?"
"머라카노, 이 가시나가."
그 남자아이가 눈을 부라리니 같이 간 친구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와 우리 친구를 때리노. 니가 잘못했다 아이가. 사과해라."
그 남자아이는 우리 친구들이 같이 달려드니 잠깐 당황했다. 그러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주먹을 불끈 지었다. 나도 마음을 다잡고 눈에 힘을 팍 주었다. 그 사내아이가 먼저 내 다리를 발로 찼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놓지를 않았다. 내가 다리에 차여서 통증이 일어나도 끝내 머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막상 싸움이 육탄전으로 번지니 싸우지 말라며 뜯어 말렸다. 그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리도 잡고, 내 손도 떼어냈다. 그 남자아이는 씩씩거리더니 울먹이며 집으로 뛰어갔다. 그 뒤로는 우리 골목 누구도 그 남자아이한테 맞았다는 말은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