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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엔 없지만, 그때가 아닐까

폭풍의 성장기, 살면서 최악의 시기인 나는 언제인가요

by 운아당

'살면서 최악의 시기인 나는 언제인가.' 이것이 오늘 써야 하는 글 제목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고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온 역사가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도 크고 작은 힘든 고개가 있었다. 막상 글을 쓰려니 지나간 것은 흘러 보내고 앞으로만 나아왔기에 다 잊어버린 듯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라도 내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었다.


나는 '1일 1쪽 100일 글쓰기 워크북'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바가 많다. 주어진 글 제목에 따라 글을 쓰려니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우리 집 상황과 사회적 국가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글 제목 따라 관련 자료도 찾아보기도 하고 희미한 나의 기억 저편을 끌어 오기도 했다. 또한 많은 부분을 엄마, 형제자매로부터 듣고 알아낸 사실도 많다. 물론 힘들지 않은 시기는 없었고 또한 기쁘고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으로 힘든 시절을 찾는다고 하니 과연 언제가 가장 힘든 시기였는지 저울로 잴 수가 없어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다시 더듬어 본다.


우리는 사회적 알람에 따라 함께 인생길을 간다. 말하자면 우리의 인생은 어린 유아시기, 아동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취업시기, 결혼, 출산, 자녀 양육기, 직장생활, 자녀 결혼, 퇴직 그리고 퇴직 후의 지금 삶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해진 길로 갈 것이다. 물론 도중에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국민학교 이전의 기억은 몇 가지 파편 외에 거의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몇 장면만 사진처럼 남아 있다. 결혼 후의 부모로부터 독립된 나의 인생이 진짜 내 인생처럼 여겨진다.


오히려 나의 최악의 시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어린 시절에는 생존의 위협이 늘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최악의 시기는 내가 태어나던 해가 아닐까. 1959년 내가 태어난 해를 우리나라 상황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굵직한 일들이 있었다.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를 위한 사전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간첩이 망명한 사건, 재일교포 북송사건, 야당 정치인들의 사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띈 것은 사라호 태풍이었다.


우리 가족은 사라호 태풍이 지나간 바로 그때, 고향 거창에서 진주로 이사를 왔다. 아무것도 없이 아들 딸 3남매를 데리고 피난하듯이 나왔다. 이사 온 동네는 농사를 지어먹고사는 진주 변두리 동네였다. 사라호 태풍은 1959년 9월에 우리나라 남쪽에 덮쳤다. 가을걷이가 한창 시작될 무렵이다. 태풍은 봄부터 여름 내내 농사지은 모든 것을 쓸어갔다. 사라호 태풍은 부산에 큰 피해를 주고 낙동강이 범람하였으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피해를 냈다. 사망사고는 물론 재산피해까지 엄청났다고 한다. 언젠가 문학회 선배가 진주 남강도 범람하여 사람들이 떠내려가고 소나 돼지, 개들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밭두렁에 가마니를 깔고 뉘어 놓고 남의 밭을 매어주고 끼니를 이어갔다고 한다. 뇌의 기억에는 지워졌지만 무의식에는 남아서 내 삶을 이끌어 오지 않았을까. 그때의 절박했던 상황이.


1959년 부산 지역의 태풍 사라 피해현장. <출처 : 연합뉴스>



https://youtu.be/VeQUAq6KuDs?si=nud8v8Kio0wgi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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