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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Story

사춘기(思春期)

폭풍의 성장기, 당신의 사춘기는 어떻게 지나갔나요

by 운아당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기라는 뜻, 사춘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한다. 격동적인 감정 변화를 느끼는 시기라는 뜻이겠지. 보통 15세~20세를 말한다고 하니 아마 중 고등학교 시절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나의 사춘기는 어떠했지. 나는 사춘기를 별로 겪지 않은 듯하다. 가물가물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질풍도 일으키지 않았고 노도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동네 골목대장으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나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조용한 아이로 달라져갔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로 성호르몬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춘정을 느끼게 된다.'라고 사전적 의미로 쓰여있다. 웃음이 피식 난다. 글쎄 나에게 그런 이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느 수요일 밤이었나 보다. 저녁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집 앞에 어떤 사람이 서있었다. 약간 무섭기도 해서 비켜서 집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내 이름을 불렀다. 익숙한 음성이라 돌아보니 동네 두 살 위 오빠였다.

"너에게 줄 것이 있어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데? 그럼 낮에 갖다 주지 뭐 하러 밤에 기다리고 있어?"

그 오빠는 내 손에 편지를 쥐어주고 뛰어갔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방에 들어와 편지를 읽어보니 나에게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받아서는 안될 것을 받은 것처럼 그 편지를 부엌에 가서 태웠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았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부모님에게 들키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 뒤로 다시는 그 오빠를 보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있는 사람처럼 심각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면서 '나는 무엇으로 이름을 남길 것인가'를 자주 음미했다. 나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늘 희미한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명확하게 잡히는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싶었다. 무언가 이것이다라는 것이 있으면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5살부터 다녔던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철야기도도 하고 새벽기도도 했다.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고 믿고 의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자아가 강해서인지 머리로는 열정적인 교회생활이었으나, 가슴은 뜨겁지고 차갑지도 않았다. 울면서 열심히 기도하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였다.


내가 20살이 되던 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의 시기가 다가왔다. 늘 함께 하던 친구들과 헤어졌다. 그 친구들은 대학이라는 같은 목적지로 떠나고, 나는 혼자 집에 있었다. 갑자기 목적지가 없어졌다. 큰 불안이 몰려왔다. 고생하는 부모님 볼 면목이 없었다. 주변에는 나를 인도해 줄 어른이 없었다. 부모님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눈뜬 당달봉사였다.


무작정 집을 나왔다. 부산으로 갔다. 그곳엔 친척 언니가 살고 있었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부마사태가 일어나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부산에는 계엄령이 내렸다. 부산 시청 앞에 탱크가 줄지어 있었지만 멍하니 버스 창으로 탱크 위 앉아 있는 군인을 바라보며 지나갔다. 나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방금 나온 어린아이였다. 그땐 왜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모르겠다. 나의 사춘기는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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