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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

기억에 나지 않는 2살의 아이에게.

by 운아당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화살촉처럼 내리 꽂히던 어느 날, 오빠는 나를 업고 남강을 갔다. 우리 집에서 남강까지는 약 2km. 엄마는 채소를 팔러 시장을 갔다가 집에 아이가 없는 것을 알고 놀라서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오빠가 아이를 업고 남강에 갔다는 말을 듣고 남강으로 뛰어갔다. 가는 도중에 아이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오는 오빠를 발견하고 '어린 아이를 업고 얼마나 아들이 고생했는가 싶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나는 물었다.

"나는 어땠어?"

"너는 온몸이 땀에 절어 맥을 못 추고 등에 엎드려 있었지."

"나는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오빠는 얼마나 고생했나 싶어 가슴이 무너지고 등에 업힌 어린 나는 궁금하지 않았냐고?"


2살의 금화야 안녕!


너를 그동안 잊고 있어서 미안하다.

이제 겨우 발을 한발 두발 떼던 너는 어디 있었니?

마루에서 놀다가 방으로 갔다가 하고 있구나.

마루에서 떨어질까봐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들어가고 하는구나

옷은 입었었니? 기억이 안 나.

집에는 누가 있었어?

엄마 아빠는 어디 갔니?

너는 아무것도 모르네.

오빠가 있었어.

엄마 아빠는 오빠보고 아기 잘 보라하고 일하러 갔어.


9살 오빠가 여름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오빠 친구들이 와서 남강에 놀러 가자고 했지.

그때 넌 조금 놀랐지. 오빠가 너를 두고 갈까 봐.

다행히 오빠는 너를 업고 친구들이랑 남강에 갔어.

한여름 햇빛은 내리쬐고 그늘은 없었어.


오빠는 나지막한 버드나무 아래 너를 눕혀놓고 친구들이랑 놀았어.

자갈을 주워다가 강물 위에 던지기도 하고 모래성 쌓기도 했어.

너는 그때 뭐 했니?

너도 모래 가지고 주무르다 놀다 입에 넣기도 했지.

너는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어.

그래도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잖아.

오빠를 불렀지만 오빠는 듣지 못하고 너에게로 오지도 않는구나

한참을 있다가 오빠가 너에게로 와서 너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어.


너는 기진맥진

오빠도 너를 업고 기진맥진

땀을 뻘뻘 흘리며 골목을 돌아서는데

엄마가 아이들을 찾으러 온 거야.

엄마는 오빠 등에 있는 너를 덥석 껴안으며

오빠 보고 괜찮냐, 이 땀 봐라며 오빠 걱정만 하는 거잖아.

엄마는 너에게 괜찮은지 이마도 만져 보지 않고 업고 집으로 왔어.

넌 배도 고프고 머리도 아프고 열도 났는데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오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더위 먹지 않았는지만 걱정했지


그때 너는 뭐가 먹고 싶었니?

물이라고? 엄마 젖이라고?

많이 목말랐겠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니까.

그때 너는 엄마가 뭐라고 말해주길 바랐니?

아이고 우리 금화, 괜찮은지 보자. 아이고 내 새끼 큰일 날 뻔했네.

어린 금화 데리고 집에서 놀지 남강에 왜 갔니. 다음에는 가지 마라.

이런 말 듣고 싶었어?

2살의 예쁜 금화야

너 걱정 많이 했다.

어린 네가 뜨거운 햇살에 더위 먹으면 어쩌나 하고

오빠가 너를 데리고 남강에 갔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데리러 간 거야.

오빠는 컸으니까 괜찮지만 너는 아직 어린데 잘못될까 봐 걱정 많았다.

다행이다.

괜찮아서. 아무 일 없어서. 고맙다.

이런 말 안 해줘서 너도 속상했지?

나는 중요하지 않나? 나는 아파도 괜찮은 아이인가? 나는 더위 먹어서 죽어도 되나?

그런 생각으로 상처가 남았지.

너는 말도 할 줄 모르니까

너는 너를 잊고 살았으니까


내가 금화 너에게 말해줄게.

미안하다. 엄마가.

그땐 몰랐다.

우리 집 장손이라 오빠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

얼마나 속상했니?

땀을 뻘뻘 흘리고 오빠 등에서 푹 쓰러져 있었는데

너를 그냥 넘겨받고 오빠만 챙겼네.

엄마가 참 미안하다.

그래도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너는 정말 나에게 소중한 딸이야.

사랑한다. 금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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