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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대어도 좋아

비스듬히, 정현종

by 운아당

그림책 코칭 강사님이 시 한 편을 건네주셨다.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다

「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해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그 시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조용한 물결이 일었다.
혼자서도 잘 서 있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왔던 내 안에
‘기댐’이라는 단어가 다정하게 스며들었다.

시인은 말한다.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도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솟은 나무도,
보이지 않는 공기가 없었다면
결코 그 자리에 홀로 설 수 없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된다.

나도 그랬다.
나 혼자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누군가의 웃음,
한 줄의 시,
창밖의 햇살,
그리고 눈 마주친 사람의 따뜻한 눈빛에
조금씩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음을 느낀다.

그 대상이 늘 맑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흐렸고,
때로는 무거웠지만
그마저도 나를 살아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기대어,
기댐으로 살아간다.

비스듬히,
내가 누군가를 받치고
또 누군가가 나를 받치고 있다.

그러니 어떤 하루에도,
“나는 혼자다”라는 말은 완전히 맞지 않는다.
내가 알든 모르든,
이미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다.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때로는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시는 조용히 말한다.
“기대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다리가 되어주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나는 오늘,
비스듬히 누군가에게 기대며,
또 누군가의 기대를 조용히 받치며
이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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