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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May 27. 2024

웃음 열쇠<방긋 아기씨>

그림책 리뷰, 윤지회 글 그림, 사계절, 에릭슨1

그림책 방긋 아기씨, 윤지회 글 그림, 사계절


  책표지에서 아기의 눈은 옆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고 나 어때요? 예쁘죠? 하는 것 같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요람에 있는 것을 보면 아직 걷지 못하고,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6개월 미만의 어린 아기인 듯 보입니다. 그래, 아유 귀엽다. 예쁘다. 


  첫 페이지에 작가는 '엄마가 웃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딸이 엄마에게 드립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문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엄마를 바라보며 가졌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책을 알고 관심을 가진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윤지회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검색창에 '윤지회'라고 입력하자 '동화작가 윤지회 , 하늘로 떠나다'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고 윤지회 작가는 위암 4기 투병생활을 하다가 2020.12.9. 오후 7시 30분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다고 합니다. 고 윤지회 작가는 ‘방긋 아기씨’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뿅가맨’ ‘우주로 간 김땅콩’ ‘몽이는 잠꾸러기’ 등의 책을 펴냈고,  2018년 2월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이후 자신의 암 투병기를 인스타그램에 ‘사기병’이라는 계정으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린 글과 그림을 모아 펴낸 에세이집이 '사기병'입니다. 


  이 작가가 쓴 책을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를 두고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과 좋아하는 그림책 쓰기를 두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 내내 마음 한구석을 찔렀습니다. 그림책 리뷰를 하면서 작가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쓰기는 처음입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정신 다잡고 이제 그림책 내용을 리뷰하러 가볼까요? 


2020. 3. 14. 중앙일보. 윤지회 작가가 최근 이사한 경기도 양평의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기씨의 엄마는 아름다운 왕비님입니다. 궁궐은 크고 화려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지요. 왕비님은 그 나라의 신하나 백성들이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자리이니 마음 터놓을 상대가 없어요. 그러니 늘 외롭고 혼자인 듯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기씨가 태어났어요. 궁궐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어요. 


  왕비는 자나 깨나 아기씨 걱정입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아주 컸어요. 아기씨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지요. 하루종일 아기씨 곁에서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어요. 잠시도 아기씨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는데 문득 아기씨가 웃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왕비님은 아기를 웃게 해주고 싶었어요.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에, 즐거운 공연까지 벌였어요. 하지만 아기씨는 무표정입니다. 아기끼는 늘 걱정많은 얼굴을 하고 우울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지요. 사실 지금 아기씨는 예쁜 것도 모르고,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즐거운 공연도 즐길 줄 모르는 시기이니까요. 아기가 자라는 발달단계가 있으니까요. 


  엄마는 불안해집니다. 혹시 우리 아기씨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사를 부릅니다. 웃게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 하지요. 의사는 깃털로 아기씨에게 건드리자 오히려 '으앙'하고 울어버립니다. 어쩌다 의사는 그 깃털로 왕비 코끝을 건드리자 갑자기 왕비가 간지러워서 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즐겁고 행복해서 웃지는 않았지만 간지러움에 한번 터진 웃음은 그칠 줄 모르고 웃어댑니다. 아기를 마주 보고 웃어 제쳤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기 눈동자에 엄마의 웃는 얼굴이 비칩니다. 그림책에는 왕비님의 얼굴이 초록색에서 화사한 살색으로 바뀝니다. 왕비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기를 바라만 보고 있던 것을 멈추고 활짝 웃으며 끌어안아주었어요. 그러자 아기씨는 방긋하고 웃었어요. 아기를 웃게 만든 것은 엄마의 웃는 얼굴이네요.


  엄마의 정서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기가 처음 대하는 대상은 엄마 아빠입니다. 왕비님은 왜 웃지 못하고 우울했을까요? 그림책에서 아빠는 한 번 등장합니다.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편인 왕과의 대화가 전혀 없습니다. 혼자서 아기를 잘 키워야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기를 씻기고 먹이는 일을 도와주는 신하들은 있겠지만,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었어요.  더구나 엄마 자신의 외로움과 우울감을 치유하지 못하고 얼굴에 무표정으로 나타나니 아기가 웃을 수 없었던게 아닐까요?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믿고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마음의 양식인 사랑을 제공할 때 아기는 때를 따라 스스로 자랍니다. 엄마의 조급한 마음에 아기는 먹지도 못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느끼지도 못하는 공연을 베풀지만, 아기가 원하는 것은 그저 엄마의 따뜻한 웃음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들은 아기의 시기별로 발달 단계가 있으니 다그치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엄마는 아기의 거울입니다. 어릴 적에 아기는 엄마를 보고 그대로 느끼고 행동하기에 엄마의 행복한 마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에 따라 적절한 환경과 마음에 맞는 양식을 제공한다면 생명은 저절로 자랄 힘을 창조주는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혹 작가는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이 자기라고 착각할 시기인, 영아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는지 모르겠군. 작가의 깊이 있는 그림과 글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그림책 리뷰입니다.   

2020.03.14. 중앙일보 인터넷기사. 윤지회 인스타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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