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그리는 세상, 일체유심조

환경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나를 이끈다.

by 운아당

오랜만에 친구 선이가 우리 집을 찾았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함께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한 사이. 어느 날, 딸기 농사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이러다 친구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며 무작정 내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집 안을 둘러보던 선이는 거실 벽에 걸린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목서각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 그래, 맞아. 정말 모든 게 마음이더라.”


선이는 얼마 전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엔 유난히 벌레가 많았고, 일행 중 한 명이 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기에 물렸던 기억이 떠오르며 몸에 열이 오르고, 어지럼증이 생기고, 두통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순간 의심과 공포가 몰려들었다. 37.5도. 체온을 재자 미열이 있었고, 병원에서 검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말라리아가 아니라는 결과를 듣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니까. 내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어. 그냥, 마음이 그렇게 반응을 만들어낸 거야.”

나는 선이의 말을 들으며 거실 벽의 글씨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 문장이, 그날따라 생기 있게 다가왔다. 벽에 걸려 있던 글씨가 마치 살아 움직이듯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병원 예약 시간에 늦을까 봐 급히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옆 차량에 긁힌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부딪힌 기억은 없었지만,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런 건 아닐까, 찜찜함이 밀려왔다. 진료를 받는 동안에도 마음은 온통 그 차에 가 있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친 사람처럼 불안한 마음에 진료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료를 마치자마자 달려가 주차장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며 천천히 확인했다. 다행히 내 차 문은 그 자국에 닿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온몸의 긴장이 얼음 녹듯 풀려내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허탈하고도 안도했다.

그때는 그저 작은 일상의 해프닝으로 넘겼다.

그런데 오늘 선이와 이야기 나누며 마음이 몸을 만들고, 몸이 다시 마음을 흔들었다는 사실이 깊이 와닿았다. 정말,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살아서 나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신기한 건, 선이가 오기 전날 밤, 문득 그녀 생각이 났었다는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했었다. 마음이 닿았던 걸까. 생각은 기적처럼 현실이 되기도 한다.

삶이란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환경이, 물질이, 조건이 나를 이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세상을 그에 맞춰 해석한다. 김상운 작가는 『왓칭』이라는 책에서 ‘관찰자 효과’를 말한다. 간절히 믿고 바라보는 대로 현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자주 바라보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도 변화해 간다.

과학도 이를 증명한다. 199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에서 실시한 양자 실험은, 미립자가 누군가가 관찰하면 입자로 행동하고, 아무도 보지 않으면 파동처럼 흩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세상은,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형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인생을 만든다.

선이는 네 아이의 엄마이다. 모두 제왕절개로 낳았다. 셋째 아이까지 수술한 뒤에는 의사가 더는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선이는 담담히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야.”
그 믿음 속에서 넷째 아이는 태어났고, 네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
믿고 바라본 대로,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자라났다.

세상이 냉혹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약해질 때, 조건 없는 위로 하나가 그립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하루를 버틴다.
그럴 때, 이 글이 당신에게 작게라도 속삭일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의 마음이 그리는 세상이, 바로 당신의 삶입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하루도, 당신의 마음이 만든 세계입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지금 마음을 조금만 어루만져 주세요.
조금만, 더 따뜻하게.

그 마음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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