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선이가 우리 집에 왔다. 선이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니다가 퇴직한 친구다. 그녀는 시어른이 하던 딸기 농사를 물려받아 쉴 틈이 없다며, 이러다가 친구 얼굴 잊어버리겠다 싶어 무작정 왔다고 했다. 내 팔을 잡고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거실에 걸린 ‘一切唯心造’란 목서각 앞에서 발을 멈춘다.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라며 되뇐다.
“맞아, 정말 ‘일체유심조’더라. 천국과 지옥이 마음 따라 변하더라니까.”
얼마 전 선이는 동남아 여행을 갔다. 그곳에는 벌레가 많았는데 일행 중 H가 모기에게 물렸다.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어올랐지만 별 증상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행은 여행 마지막 일정까지 잘 마치고 귀국했다. 하지만 H는 귀국하고 며칠이 지나자 고열과 두통이 있어 병원 갔더니 말라리아였다는 것이다.
“그 말 전해 듣는 즉시 내 몸에서 열이 나고 두통에 어지럼증이 생기더라. 사실 나도 여행지에서 모기 물렸었거든. 그 말 듣기 전에는 아무 증상 없었는데 그 순간 서있지 못할 정도로 앞이 캄캄해지더라고. 체온기로 재어 봤더니 37.5도, 병원 가서 검사받고 아니라는 진단을 듣자 바로 증상이 없어졌어. 마음이란 참 요상하더라고. 내가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것을 체험하고 좀 놀랐어.”
늘 벽에 걸려있던 ‘一切唯心造’ 글자가 새롭게 다가와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글자가 생동감을 얻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음에 반가운 표정이다. 한 번 더 올려다보며 며칠 전 병원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이 생각났다. 예약 시간이 다 되어가서 급하게 주차를 하고 문을 열고 내리는데 옆에 있는 차량에 긁힌 자국이 눈에 띄었다. 부딪힌 느낌이 없었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나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일단 그 자리를 떠났지만 진료를 보는 중에도 의사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친 것 같아 전전긍긍하였다. 진료를 마치고 한달음에 주차장에 와서 현장 검증하듯이 차 문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그 자국이 있는 곳까지 내 차 문이 닿지 않았다. 순간 얼음 녹듯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확 풀렸다.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상으로 지나쳤는데 오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평소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서 몸이 반응하고, 몸에 증상이 나타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오늘 선이 친구가 오기 전에, 나도 선이 생각이 나서 요즘 잘 지내나 했던 것이다. 생각한 대로 나타나는 현상이 신기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마음으로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환경이나 물질적인 조건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마음이 나를 이끌어간다. 김상운 작가는 저서 <왓칭>에서 ‘관찰자 효과’를 소개한다. 마음으로 간절히 믿고 바라면 실제 세계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자주 바라보는 이미지대로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관찰자 효과는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양자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과학원이 1998년 실시한 이중슬릿(가늘고 긴 틈) 실험이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미립자를 이중 슬릿을 통과하는 실험에서, 눈으로 바라보면 미립자가 직선으로 이중슬릿을 통과하여 뒷면에 알갱이 자국을 두 줄로 남긴다. 반면 누군가가 바라보지 않으면 미립자는 물결처럼 통과하여 벽면에 수많은 물결 자국을 남긴다. 바라보는 대로 파동으로 존재하던 미립자들은 보이는 입자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선이는 4남매를 낳았다. 모두 제왕절개를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4남매를 키우는 것이 힘든 일이기도 하고, 3번 수술할 때 만해도 의사가 위험하다고 했기에, 4번째 아이는 가족은 물론 나도 말렸다. 하지만 선이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다라며 수술을 강행했다. 4남매는 잘 자라서 모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하여 잘 살고 있다. 바라고 믿는 대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