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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Nov 24. 2024

엄마가 눈을 찌르며 잠들지 않은 이유

   엄마는 잠을 안 자도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가 자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자기 전에 잠든 적이 없고, 내가 일어나면 이부자리가 나란히 개어져 있었다. 엄마 옆에 자고 싶어 겨우 차지한 자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보면 텅 비어있을 때 느끼는 휑한 공허감은 어린 내 마음에 자리했다. 

 나는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잠이 없냐고. 낮에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면 몸이 피곤해서라도 골아떨어질 텐데 이상하다고 물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를 돕기 위해 눈을 찔러가면서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도 없이 혼자서 네 자녀를 키우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외할머니가 베를 짜면 엄마도 그 옆에서 외할머니가 잠이 들 때까지 물레를 돌리며 베를 짰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베를 짜고 자면 엄마가 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지. 엄마가 들에 나가 없으면 집안일을 내가 해놓으면 엄마가 잠을 더 잘 수 있을 거라고... 어떤 날은 베틀 앞에서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어. 어쨌든 고생하는 엄마를 도와드리고 싶었어."

 그렇게 어릴 적부터 잠을 자는 것을 터부시 했으니 자연스럽게 잠이 없어졌다. 엄마는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든이 넘어서 무료하게 보내던 나날도 습관은 계속되어 불면증이 심하게 오기도 했다. 수면제를 먹어라 해도 치매 걸릴까 봐 먹지 않고 버텼다. 


  외할머니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을 하여 살기가 좀 나아졌다. 외삼촌은 장성하여 얼굴도 훈훈하고 풍채도 좋고 성실하고 부지런하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남의 집일, 내 집일 할 것 없이 열심히 일해서 외할머니를 도왔다. 외할머니 역시 바느질 솜씨가 좋아 먼 지역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집안살림은 좋아져서 집도 마련하고 농토도 샀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1930년대,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고, 세계는 2차 세계대전으로 최대의 경제위기와 전쟁으로 인간 존엄성이 땅에 떨어질 때였다. 세상 밖은 그렇게 요란스럽고 전쟁으로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여겨질 때였지만, 물론 그 영향이 산골마을에 까지 있었지맘, 그래도 엄마는 그때가 참 행복했었다.

 동네 친구들하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놀았던 기억, 엄마가 놀았다는 것은 빨래를 하거나 들에 가서 밭일을 돕거나 소를 몰고 풀을 먹이러 다니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일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니 그렇게 재미있었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총기가 좋았다. 글자도 다 읽을 줄 알았고 셈도 잘했다. 엄마 또래 친구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궁금했다. 

"그때 우리 동네에 교회가 있었어. 밤에 야학을 했는데 한 달을 배웠지. 선생님이 내가 빨리 배우고 글도 잘 쓴다고 칭찬을 했어.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이 재미있고 좋았어."

 외할머니는 그 교회를 다녔는데 아픈 외삼촌을 낫게 하려고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러 갔다고 한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친다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엄마도 외할머니 따라 몇 번 가긴 했으나, 할 일이 많아서 한 달 다니고 엄마 대신 집안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야 엄마가 마음 놓고 외삼촌을 데리고 다닐 수 있으니까. 공부를 좀 더 많이 하지 않은 일은 엄마가 많이 아쉬워했던 점이다.

"내가 공부를 1년만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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