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청에 가을바람이 붑니다

불과 물에 헤어진 상처를 치유하여 주소서

by 운아당
KakaoTalk_20250720_100139984_01.jpg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지나간 봄은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대원사 계곡에는 분홍빛 진달래가 피어났습니다
개나리와 산수유는 꽃망울을 벙글어
햇살 속에서 활짝 피어날 날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불씨 하나는 도깨비가 되어
집 나간 아들이 어머니의 가슴을 태우듯
온 산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삼켜 버렸습니다


여름은 더욱 참혹하였습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산에는
성난 괴물의 울음 같은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지리산은 극한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제 살을 도려내어 흘려보냈습니다.
거센 흙탕물은 마을을 덮쳤고,
사람과 소들이 휩쓸려 내려갔습니다.

추동댁의 소가 물살에 떠내려가며
던지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기도하던 스님과 마을 사람들 또한
한순간에 물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가을이 무심히 찾아 왔습니다
시커먼 뼈가 드러난 산등성이에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일렁이는 강물 위에는
맑고 시원한 가을 향기가 퍼져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실바람에도 쓰리고,
붉게 물든 저녁노을 보고 놀라 가슴이 떨립니다.
백일홍만 아무 일 없는 듯 흔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가을의 바람이여,
잿빛으로 그을린 지리산 산청 산등성이 위에
다시 아름다운 들꽃을 피우소서.
흐르는 강물 위에 생명의 샘을 솟아나게 하소서.

두려움에 흔들리는 눈빛을 위로하시고,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주소서.
허망히 떠난 소중한 영혼은 별빛이 되어
우리 지리산 산청을 지켜 주게 하소서.

이 땅의 깊은 흉터가
기도의 꽃밭으로 아물게 하소서. (2025. 9. 13.)

물에 빠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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