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안전감을 확보하려는 본능
엄마가 다 마신 물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시골에서 물을 길어 와 물통에 담아 마시는데, 깨끗한 물병이 귀하다. 그래서 그 물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쓸 데 있으니까 저 주세요.”
그러자 엄마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다 가져가라.” 하며 박스까지 들고 와 물병을 담아주셨다. 그리고는 덧붙이셨다.
“내가 쓰던 걸 버리려 했는데, 네가 쓸모 있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
엄마는 버리려던 물건이 내게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기쁨을 느끼신 듯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묘하게 복잡했다.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찾아내는 엄마의 마음이 어쩐지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장면이다. 버리려던 물건이 자식에게 필요하다면 누구든 기쁠 수 있다. 그러나 엄마가 말한 “내가 쓰던 게 쓸모 있다”는 표현 속에는 조금 더 깊은 마음이 숨어 있는 듯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는 누군가에게 중요한가?”를 확인한다. 이는 단순한 인정 욕구가 아니라, 존재의 안전감을 확보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심리학자 보울비가 말한 안전기지처럼, “나는 있는 그대로 의미 있는 존재다”라는 확신을 받아야 비로소 우리는 안정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엄마가 가장 쉽게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쓸모 있음’이었을 것이다.
95세의 늙은 몸,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혹은 필요로 할까. 혹시 주어도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버려질 물병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신 게 아닐까.
그 순간, 엄마는 단순히 물건이 쓸모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버린 것도 누군가에겐 의미 있구나. 그렇다면 나 역시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일 수 있구나.”라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신 건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사회는 늘 ‘쓸모’를 강조한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사회에서는 직업과 성취가 사람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쓸모 있는 나를 보여줘야 사랑받는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쓸모는 언제든 변한다. 오늘 쓸모 있는 것이 내일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쓸모에 기대어 자기 가치를 세우는 사람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이 아니다. 오히려 “엄마가 그냥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확인이다. 쓸모를 넘어선 존재 자체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 그것이 곧 존재의 안전감이다.
심리학자 로저스는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잘해서,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하기 때문에 존중받는 경험이야말로 살아갈 힘을 단단하게 지탱해 준다.
버려질 물병 하나가 쓸모 있음에도 기쁨을 느끼신 엄마의 마음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엄마가 세상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작은 몸짓이었고, 동시에 딸인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2024.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