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가끔 해장국을 사 먹는 재미로 새벽시장을 간다.
오늘은 조금 늦었다. 시계는 아침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앙시장 해장국집 앞은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골국 냄새가 새벽의 찬 공기를 데웠다. 속이 뜨끈해지자 몸도, 마음도 서서히 깨어나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도로변으로 나가 새벽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 시장에는 어김없이 어르신들이 직접 밭에서 캐온 채소나 과일을 상가 앞에 펼쳐놓고 판다.
새벽장 여는 시간은 이른 아침, 그리고 깨끗이 정리하는 시간은 아홉 시.
그 시간이 지나면 행상들은 짐을 싸서 흩어지고, 가게는 문을 연다. 오늘은 거의 아홉 시가 다 되어서 시장을 둘러보게 되었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정리하고 떠난 뒤였다. “그냥 돌아갈까…”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 한 할머니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 노인은 낡은 손수레를 밀고 다리를 끌며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수레 위에는 흙이 묻은 무 몇 봉지와 대파 한 단이 실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 가느다란 어깨,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손수레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마음 한쪽을 건드렸다.
“할머니, 이 무랑 대파는 얼마예요?”
할머니가 허리를 젖히며 나를 올려다봤다.
“무는 하나에 이천 원, 열 개 남았고… 대파는 오천 원이요.”
말투에는 권하는 기색도, 절실하게 팔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사줄 거라는 기대를 접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심히 담담했다.
나는 잠시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제가 다 살게요.”
손수레에서 무를 내리는데, 묵직한 무게가 팔에 전해졌다. 이렇게 무거운 걸, 그 작은 몸으로 밀고 다니셨다니. 나는 주머니에서 이만오천 원을 꺼내 할머니의 손에 쥐어드렸다.
할머니의 손바닥은 거칠고, 따뜻했다.
“고맙소.”
할머니는 얼굴이 약간 이그러지듯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 가을 무는 유난히 크고 묵직하다. 무게만큼 속도 단단할 것이다.
현관 앞에서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무 하나 드릴까요?”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들었다.
그 미소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점심에 옛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무를 몇 개 챙겨 갔다.
“이거 시장에서 산 거야. 아주 싱싱해.”
친구들은 손에 쥔 무를 보며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좋아했다.
아파트 청소하시는 분께도 한 개 드리니, 그분은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무 몇 개로 사람들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그때 문득, 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어머니는 채소를 잘 다듬어서 새벽에 시장에 팔러 갔다.
오늘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그때의 어머니가 겹쳐 보였다.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여인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밤이 되어 냉장고에 무 몇 개를 정리하면서 그 할머니에게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 덕분에 하루를 따뜻하게 보냈다. 이웃들과 나누며 마음을 데웠고, 잊고 있던 엄마의 향기를 다시 느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한 "하루를 기쁘게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침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 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