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글꽃 향기
"사람이 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이 오늘따라 가슴에 오래 머문다.
글꽃 향기에서 두 번째 합평회를 하던 날이었다. 지난번엔 글향과 나, 단둘이서 조용히 글을 나누었지만, 이번에는 누가 올까 기대가 되었다.
문을 열자 키가 자그마한 여성이 화사한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반갑습니다. 숙향이에요.”
그녀는 첫인사부터 햇살처럼 따스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작품을 나누며 합평회를 시작했다. 숙향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간증했던 글이라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진중하고 진실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하나님이 40년 동안 해온 배우자를 위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그래서 날마다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마음씨 자상하고 내 마음 알아주고, 말이 통하고, 키도 좀 큰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했는데, 3년 전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올해 일흔둘이다. 그녀가 두 번째 만난 남편은 일흔여덟이다.
그녀는 서른 살에 결혼했지만, 결혼 넉 달 만에 남편은 외국으로 떠났다.
“자리 잡으면 부를게.”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연락은 끊겼고,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혼자서 딸을 낳고 키웠다. 사십 년을 그렇게 버텼다고 했다.
부부가 손잡고 아이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렇게 부럽고 눈물이 났다는 그녀가, 지금은 “가장 이상적인 남편을 만났다”며 웃고 있었다.
낭독 도중,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요.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저는 늘 기도했거든요. 그만큼 기다림이 길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들고 시간이 아까워요.”
그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오랜 바람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한 것이다.
그녀가 저렇게 행복해하는 것 또한 물리적 조건이나 환경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도한 대로 거의 이상형에 일치하는 이상형이어서가 아니라. 간절히 기다리고 모진 세월을 견디어 온 절실한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앳된 표정이다. 웃음에는 생의 고비를 넘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평안한 모습이 스미어 있었다.
“지금은 남편과 매일 산책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며 살아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해졌다.
그때 나는 불현듯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며칠 전, 남편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슬며시 부끄러워졌다. 남편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늘 불만을 터트리곤 했으니까. 그녀가 사십 년의 세월 동안 부러워한 그 인생을 내가 살고 있었으면서도 늘 불만이었음을 반성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 나는 숙향의 일생을 조금 엿보았다. 그것은 기다림의 역사이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기적의 서사였다. 그리고 그녀의 일생의 향기는 내 삶의 자세를 다시 세우게 했다.
합평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지버섯 차의 쌉쌀한 향이 다시 입 안에 맴돌았다.
숙향의 인생이, 글향의 진심이, 그리고 나의 하루가 서로의 향기로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오늘 나는 또 한 사람의 일생을 만났고, 그 만남을 반추하며 내 삶의 온기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