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말했다.
“딸을 보내던 날, 명동 백화점에서 망사 드레스와 분홍색 구두를 신겼어요. 입양 가는 아이들 중에 제일 예쁘게 해서 보내고 싶었어요.”
'퍼즐트립', 해외입양인의 피붙이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케리는 마흔한 살. 입양 후 스무 살 무렵 미국에서 어머니를 잠시 만났지만, 그 뒤로 소식이 끊겼다. 다시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것은 26년 만이었다. 그동안 케리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찰관이 되어 묵묵히 삶을 살아냈다.
제작진은 오랜 수소문 끝에 91세의 어머니를 찾았다고 알려왔다. 요양병원에 계신다고 했다. 연결된 전화 너머, 어머니는 놀랍게도 단번에 딸을 알아보았다. 케리는 망설임 없이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두 모녀는 서로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수십 년의 세월도 혈연의 기억 앞에서는 무력했다. 사랑의 언어는 시간과 무관하게 흐르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물었다.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는지, 직장 생활은 어떤지,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은지. 그것은 결국 혼자 먼 나라에서 살아온 딸의 삶이 혹여 상처투성이가 아니었기를 바라며 묻는, 어머니 특유의 안부였다. 케리가 대학원까지 마치고 경찰관이 되었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너의 키워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해라. 내가 키워주지 못한 너를 키워줘서… 고맙다고 전해라.”
얼마 후 어머니는 천천히 무엇인가를 꺼냈다.
“이 옷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인데… 네가 가져가거라. 네가 입어도 좋고, 혹시 나를 보고 싶으면 이 옷을 보면 된다. 나는 나이가 많으니…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케리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옷장을 차근히 정리하셨다. 설에 인사 오던 큰딸에게는 곱게 입던 옷을 건네고, 나에게는 아끼던 치마 두 벌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내가 아끼던 거야. 너 입어라.”
그 말은 단순히 옷을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남은 시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떠날 준비를 하며 자식에게 전하는 마지막 마음의 일부였다.
아마도 어머니들은 아는 것 같다. 언젠가 자식을 먼저 두고 가야 하는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그래서일까. 그 짧은 남은 시간 동안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옷 한 벌, 손때 묻은 물건 하나, 오래 묵은 목소리 한 조각이라도. 그것이 남겨진 자식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세상 어디엔가 어머니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면 자신이 가고 나서 자식들이 슬퍼서 마음 아플까 봐 나를 보듯 보라고 뭔가라도 쥐어 주는 마음이 아닐까.
91세의 어머니가 딸에게 옷을 건넨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품어온 그리움의 모양, 말로는 다 건네지 못한 사랑의 남은 한 줌, 딸의 손에 쥐어주고 싶었던 마지막 연결의 끈이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사랑을 그렇게 형태를 바꾸어 남기려고 한다.
어린 날 신겨주던 분홍 구두가 되기도 하고, 떠나는 딸을 위해 고른 드레스가 되기도 하고, 삶의 마지막에서 건네는 옷 한 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말과 행동이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것만큼은 잊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