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창세기를 읽고 묵상하며
창세기의 첫 문장은 언제 읽어도 나의 마음을 멈추게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설명도, 변명도 없이 오직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이 문장은, 마치 내 몸과 마음에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다. 세상의 시작이 우연이 아니라, 뜻과 의지를 가진 창조주로부터 나왔음을 담담하게 선포한다.
창세기는 아무 형태도, 질서도 없던 혼돈과 공허로 가득한 어둠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빛이 있으라.”
그 말씀 한마디에 어둠은 물러가고, 빛은 존재하게 된다.
나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이 말씀이 지금의 나에게도 건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향을 잃고, 이유 없이 무너지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로 뒤엉킨 혼돈의 마음 한가운데에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빛이 있으라.”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창조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첫 빛이 말씀이었듯, 오늘 내 삶의 빛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켜진다.
창조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반복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다. 그중에서도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신다. 흙으로 빚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신 존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이 말씀 앞에서 나는 쓰러졌던 무릎을 다시 세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에 늘 목말라 있던 딸로서의 마음, 세상의 기준과 관습 속에서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고 느꼈던 깊고 오래된 슬픔이 떠오른다. 남과 비교하면 늘 부족하고 흔들리는 존재처럼 느껴졌던 나였지만, 하나님의 창조 선언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향해 분명히 말씀하신다.
“심히 좋았더라.”
이 선언은 내가 스스로를 부정해 오던 시간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새로운 정의였고,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흔들리던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 주는 뿌리가 되었다.
그러나 창세기는 아름다운 창조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 이후 죄는 인간의 삶 깊숙이 스며들고, 관계는 깨어진다. 선악과 앞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신뢰했고, 그 선택은 하나님과의 단절로 이어졌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 없이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창세기는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 결과로 찾아온 수치와 두려움, 서로를 향한 책임 전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에서 가장 깊이 마음을 울리는 장면은, 범죄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은 위치를 묻는 말이 아니라, 깨어진 관계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지만, 죄인 된 인간을 포기하지도 않으신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장면에는 이미 은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희생이 필요했고, 그 희생은 훗날 십자가로 이어질 구속의 예표가 된다.
이 질문은 성경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지 않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부르신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숨고 싶을 때, 스스로를 외면하고 싶을 때에도 하나님은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신다.
창세기는 또한 인간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죄는 깊어지고, 인간은 교만해지며, 세상은 점점 하나님을 잊어간다. 노아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은 세상에 가득한 죄악을 보시고 홍수로 심판하신다. 겉으로 보기에는 파괴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방주를 예비하시고 노아의 가족을 남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쓸어버리시되, 인류의 역사를 끊지 않으신다. 홍수 후에 세워진 무지개 언약은 심판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바벨탑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이름을 높이려 했고, 하나로 뭉쳐 하늘에 닿으려 했다. 하나님은 그 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흩으신다. 그러나 이는 인류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만으로 치닫는 길을 멈추게 하시는 은혜의 개입이었다. 흩으심은 단절이 아니라, 온 땅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공의에 따라 심판하시지만, 그 직전까지 의인 열 명을 찾으시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끝까지 끊지 않으시는 분임을 드러내신다. 롯의 가족을 건져내시고, 멸망 속에서도 남은 자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은 파괴 가운데서도 구속의 실을 놓지 않으신다.
이처럼 창세기의 하나님은 무너뜨리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이어 가시는 분이다. 죄를 외면하지 않으시되,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파괴는 끝이 아니라, 다시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아픈 선택이다.
그래서 창세기는 시작의 책이면서 동시에 약속의 책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한 사람을 통해 모든 민족을 복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실패한 인간 역사 위에 구속의 길을 다시 잇고 계신다.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이 창세기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창세기를 읽을 때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혼돈 가운데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실패 이후에도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리고 여전히 “좋다”고 말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의 자녀이니, 나에게 꼭 붙어 있으라.”
태초에 말씀으로 시작된 그 이야기는, 오늘도 내 삶 한가운데에서 살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