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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태 변리사 Apr 26. 2022

네슬레가 네스프레소 캡슐을 상표로 등록한 이유

원하든 원하지 않든 특허의 만료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위스의 식품 제조사 네슬레입니다.

 

1986년 네슬레는 네스프레소 머신과 캡슐을 출시했습니다. 네스프레소는 최초로 가정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릴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네슬레는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네슬레에게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네스프레소 특허가 만료된 이후의 보호 방안이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네슬레는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바로 네스프레스 캡슐을 상표로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허의 존속기한은 최장 20년이지만, 상표는 상표권자가 그 상표를 사용하는 한 존속기간을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네슬레는 네스프레소의 캡슐 디자인을 3차원 입체상표로 출원하였고 해당 상표는 2001년 7월에  등록되었습니다.

네슬레의 등록상표 IR 763699

그러나 네슬레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17년 12월, 독일 연방특허법원은 네스프레소 캡슐의 입체상표를 무효로 판결했습니다. 네슬레가 등록한 캡슐 형상은 네스프레소의 머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형상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는 상표로 보호될 수 없는 표지에 해당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스위스 대법원도 2021년 9월 네슬레의 입체상표를 무효로 판결했습니다. 


그렇다면 3차원 입체상표를 이용한 네슬레의 전략은 실패한 것일까요? 저는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표출원 시점에서 해당 캡슐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은 네스프레소 제품이 유일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디자인이 소비자들에게 네슬레의 네스프레소 제품을 나타내는 상표로도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 네슬레의 판단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상표 무효의 판결이 나온 것은 최초 출원일로부터 약 16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상표권이 무효로 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 경쟁자들은 상표의 존재로 인해 마음 놓고 호환 캡슐을 제조 및 판매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2011년 네슬레로부터 호환 캡슐의 판매금지 청구를 당한 스위스의 Ethical Coffee社는 지리한 소송 과정 중 2018년 파산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재산 전략의 성패는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한 기간 동안 경쟁자의 시장 진입 시점을 지연시키는 것도 훌륭한 지식재산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해당 기간 동안 기업은 경쟁사로부터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차기 제품을 개발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권리가 거절 또는 무효로 되는 것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네스프레소 호환 캡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은 네슬레의 주요 특허들이 만료되고 상표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초 부터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네슬레는 네스프레소가 처음으로 출시된 1986년부터 약 25년 이상 지식재산권을 통해 해당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014년 네슬레는 오리지널 머신과 다른 추출 방식을 가진 버츄오를 출시했습니다. 아직까지 버츄오 호환 캡슐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네슬레의 지재권 역량을 볼 때 버츄오 호환 캡슐이 나오기까지는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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