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설계(design around)란 등록특허의 권리범위를 침해하지 않도록 제품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업이 개발한 제품이 경쟁사의 특허를 침해할 경우 경쟁사는 해당 제품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특허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품 개발 단계에서 경쟁사의 보유특허를 파악하고 이를 피해 제품을 설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회피설계는 특허발명의 청구항에 기재된 필수 구성요소 중 하나 이상을 제외하거나 다른 요소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제품이 등록특허를 침해한다고 판단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이 특허의 청구항에 기재된 모든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s Rule)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등록특허의 청구항에 기재된 요소 중 하나라도 포함하지 않는다면 침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특허발명은 여러 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므로, 이들 중 하나를 제외하거나 다른 요소로 변경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회피설계를 진행해 보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회피설계안의 기술적 타당성입니다. 특허발명의 필수 구성요소들은 말 그대로 해당 발명을 구현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하나를 제외하거나 변경할 경우 발명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특허발명에 비해 성능이 저하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회피설계안을 도출할 때에는 기술 담당자의 자문 또는 실험 등을 통해 회피안의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균등론에 의한 침해 가능성입니다. 균등론이란 어떤 제품이 특허발명과 차이가 있어 문언적으로는 침해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그 차이가 미미하여 실질적으로는 특허발명과 동등한(equivalent) 것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여전히 침해가 성립한다는 이론입니다. 회피설계의 핵심은 특허발명의 필수 구성요소를 제외하거나 다른 요소로 변경하면서도 여전히 특허발명이 의도한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변화의 정도가 적을수록 설계가 용이하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너무 작아 균등론에 의한 침해가 인정될 정도라면 회피설계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므로, 기술적 타당성에 대한 검증과 함께 균등론의 적용 가능성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술적 타당성이 회피설계의 기술적 측면에서의 검토라면, 균등론에 의한 침해 가능성은 회피설계의 법률적 측면에서의 검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회피설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기술 전문가와 특허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회피설계안의 특허 등록 가능성입니다. 회피설계를 통해 도출된 기술이 그 자체로 기술적 의미가 있고, 특허발명과 비교하여 신규성, 진보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회피설계안에 대한 특허 출원을 통해 별도의 특허권을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회피설계안은 등록특허의 권리범위를 회피한 것이므로, 이를 특허로 받아두더라도 원 특허권자인 경쟁사에 대해서는 침해가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특허등록을 통해 적어도 다른 경쟁사가 회피설계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제3의 경쟁사 입장에서는 원 특허권자가 가진 특허 이외에 회피설계된 기술에 대한 특허까지 모두 회피하여야 안전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 특허를 가진 기업끼리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를 체결함으로써 추가적인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고 사실상의 과점 체제를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