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행사의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청구범위를 작성해야
한 기업에 지식재산 자문을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기업은 공장의 생산 설비로부터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획득하여 공정의 이상 발생을 예측하는 모니터링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로, 관련 특허도 여러 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담당자와 기업의 보유특허를 검토하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 특허의 청구항이 다음와 같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아래 내용은 실제 청구항과는 다르며 설명을 위해 간략화 및 재구성을 거친 것입니다).
공장에 설비된 생산 장비; 및
상기 생산 장비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상 발생을 감지하는 모니터링 장치를 포함하는, 스마트 공장 운영 시스템.
위 청구항을 보고 기업 담당자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주된 고객사는 어디인가요?”
“저희는 주로 제조 설비의 모니터링 장비를 개발하는 회사라, 고객도 주로 제조 설비를 갖춘 공장주들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는 경쟁사들도 있나요?”
“네 저희와 유사한 모니터링 장비를 제조하는 업체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위 문답을 정리해 봅시다. 자문 대상 기업의 고객은 제조 설비를 가진 공장주이고, 경쟁사는 공장에 들어가는 모니터링 장비의 제조사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위 청구항을 다시 살펴볼까요? 청구항의 구성요소는 1. 생산 장비, 2. 모니터링 장치,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이 중 생산 장비는 당연히 공장주가 소유한 것이고, 모니터링 장비는 자문 대상 기업이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입니다. 즉, 공장주가 자문 대상 기업으로부터 모니터링 장비를 구입하여 자신의 공장에 설치하게 되면 위 청구항의 청구물인 “스마트 공장 운영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문제는, 여기서의 공장주는 기업의 고객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공장에서 경쟁사으로부터 모니터링 장비를 구매하여 공장에 설비하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특허를 가진 기업은 공장주에 특허 침해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론적으로야 충분히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잠재적인 고객사에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선택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경쟁사에 대한 침해 주장은 가능할까요? 특허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침해 대상 물품이 특허 청구항의 모든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이를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이라 합니다). 그런데 경쟁사는 위 청구항의 일 구성요소인 “모니터링 장치”만을 제조하여 판매할 뿐, “스마트 공장 운영 시스템”을 실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위 청구항으로는 경쟁사에 대한 침해 주장도 불가능합니다(물론 일정 요건을 만족한다면 특허법상의 ‘간접침해’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겠습니다).
결국, 위 기업은 어렵게 특허는 등록받았지만 청구범위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특허권의 권리행사가 어렵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특허를 등록하는 목적은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특허를 등록받았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독점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명세서를 작성할 때부터 명확한 권리행사의 대상(target)을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청구범위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소홀히 했다가는 자칫 어렵게 등록받은 특허가 실질적으로 권리행사가 불가능한 애물단지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