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 없는 운동이 남긴 허기

피로와 정석의 충돌

by 박보라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근육의 피로를 넘어 일상의 모든 무게가 한꺼번에 머리 위로 쏟아진 듯한 그런 날. 정신은 멍했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다 내려놓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지만, 헬스장으로 향했다. 정해진 일정은 무조건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운동으로 피로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를 운전대 앞에 앉게 했다.


이날의 종목은 어깨. 첫 운동으로는 '스탠딩 벤트오버 레이즈'를 3단계로 나누어 시행했다. 이 운동의 핵심은 명확하다.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팔을 들어 올릴 때, 어깨와 팔이 완벽한 일직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 던지듯 올리고, 내려올땐 이두로 옆 가슴을 밀며 무겁게 받아주기. 이두 쪽 팔을 살짝 내회전시키고, 손은 바깥쪽으로 향하게 덤벨을 쥐기. 관절과 무게 사이의 거리와 각도를 흐트러짐 없이 지키는 것이 중요한 운동.

페이스풀


하지만 어깨와 팔꿈치를 일직선으로 유지하는 것이 유독 난해했다. 포화 상태에 이른 피로는, 정석을 지키려 할수록 자꾸만 경직되는 것 같았다. 동작 하나하나 매뉴얼대로 하려다 보니, 정작 중요한 움직임의 리듬은 사라지고 숫자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건조한 공기로 숨쉬며 나는 오직 궤도를 사수하는 데만 급급했다. 작은 유격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함이 피로 때문에 훨씬 더 서글프게 다가왔다.


이어진 '덤벨 업라이트 로우'. 거기서 혼란은 정점에 달했다. 이 운동 역시 섬세한 조절력을 요구한다. 팔꿈치를 어깨 높이까지 올리며 팔은 앞쪽을 향해 뻗어야 하는, 각도의 총체적인 결합체 같았다. 문제는 그 정교한 각도를 지켜야 하는 찰나에 마주한 무결함이었다. 어떤 틈이나 유연한 호흡이 자리 잡을 곳이 없었던.


집중력은 미세한 궤적의 차이로 분산됐고, 내 몸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삐그덕거렸다. 팔꿈치를 들어 올리고 팔을 앞으로 뻗어야 하는 그 짧은 순간마다 스스로의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렸다. 환경은 딱 정석이었는데, 내 안의 평형 감각은 오작동을 일으켰다. 피로는 이렇게 사람을 서글프게 하는구나,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래도 자세는 잡혔다. 움직임은 교과서적이었고, 세트 사이의 휴식 시간도 규칙적이었다. 하지만 그 결함없는 정석이 반복될수록 나는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이날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완벽한 각도였을까, 아니면 작은 유연함이었을까. 유연해질 수도 있었던 순간에 어김없이 작동하는 정렬의 관성은 매번 겪어도 늘 낯선 무게로 남는것 같다.


효율적인 궤도를 그리려면 정밀한 각도와 함께 유연한 호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내 운동에서 그런 호흡은 없었다. 정교한 선을 지켜야 한단 생각이 오히려 숨 막히게 다가왔다. 좁혀지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지지도 못한 채 평행선을 긋는 덤벨의 끝단처럼, 너무나 정확해서 당황스러운.


운동을 마치고 거울 속의 어깨를 보며 생각했다. 정해진 선을 잘 지켜내는 것만이 정답일까. 억지로 맞추는 선은, 때론 목적지를 헷갈리게 하거나 진짜를 잃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피로한 마음에는 그 반듯한 정석이 때로 아픔이 될 수도 있단 걸, 이날의 운동을 통해 알게 됐다.


어쨌든 나는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고, (좀 덜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날의 세트를 다 채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덤벨을 놓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 허기짐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정확해서 오히려 더 길을 잃어버린, 낯선 운동을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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