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는 감각에 대하여

아픔도 이렇게 들어올릴 수 있길

by 박보라

바벨 백 스쿼트, 40kg. 오랫동안 이 무게가 내 한계였다. 일단 어깨에 무거운 바벨을 얹는다는 것이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부담이었다. 40kg 5개를 채우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갔고. 몇 달 동안 그게 내 한계라고 믿었고, 도통 늘지 않는 기록에 스쿼트를 잘 하지도 않았다.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면 오로지 '힙' 고립 운동만 했다. 스쿼트 해서 뭐하냐, 엉덩이만 예쁘게 잘 만들어 보자, 괜히 혈압 올리며 스쿼트 하지 말자, 쓰러진다. 스쿼트를 하면 필연적으로 마주할 내 한계를 그렇게 외면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운동 선생님이 그랬다. 그래도 힙 만들려면 고중량 스쿼트를 해야 한다고. 그게 제일 빠르다고. 어쩔 수 없단 생각으로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바벨에 플레이트를 끼웠다. 평소처럼 40kg 바벨 아래로 들어갔다. 어깨에 단단히 고정하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데, 어라. 느낌이 조금 달랐다. 플레이트를 잘못 끼웠나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바벨이 가벼운 것인지, 플레이트를 덜 끼운 것인지 다시 랙 앞에 서서 확인까지 했다. 정확히 20kg 바벨에, 양쪽에 10kg씩 꽂혀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스쿼트를 시작했는데 5개면 이미 벅차던 무게가 10개를 채워도 여유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게 지금 40kg 스쿼트가 맞긴 한건가, 황당했다. 벽 같이 느껴지던 무게가 갑자기 만만한 디딤돌처럼 느껴진 그 순간이.


내친김에 50kg을 들어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한 번도 들지 않았던 무게. 왠지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5개 성공.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분명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무게란 확신이 들었다. 욕심을 더 냈다. 55kg까지 도전. 이건 1개를 겨우 들고 2개째엔 깔렸다. 안전바에 바벨을 내려놓고 랙 아래에서 기어 나오는데 웃음이 났다. 이번 주 후반을 통틀어 처음으로 진심인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내 미소에, 내가 행복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55kg에 깔렸지만, 40kg가 이렇게 가볍게 느껴진다는 그 생경한 감각이 압도적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원래 성장은 계단식으로 온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성장이라는 건 훨씬 더 불친절하고 갑작스럽다. 기록을 늘리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지난 날.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도 않던 그 문이, 어느 날 갑자기 손만 댔는데 스르르 열렸다.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를 알 수는 없을테다. 그저 그동안 여러 무게를 견디며 보이지 않게 쌓아온 시간들이 오늘 비로소 임계점을 넘기게 된 거겠지.


어제까지 나를 누르던 40kg이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감각의 변화.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어느날 갑자기 풀린다면, 내 상황이 한단계 올라갔다는 신호로 봐도 될까.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다시 정의하게 된 오늘의 순간. 그건 단순히 힘이 세진 것을 넘어 내 한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경험이 된 것 같다. 그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주변의 다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그 문제도 결국 어느 순간 해결되어 있을거라는 확신 비슷한게 생겼다.


스쿼트는 오늘을 기점으로 이젠 50kg를 기본값으로 두고 다시 시작되겠지. 운동이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났지만 어깨에 남아있는 그 가벼운 이질감이 잊혀지질 않는다. 살면서 마주하는 다른 문제도 이랬으면 좋겠다. 지독하게 아픈 문제와 숙제들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 올려진다면. 그런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하루 살아가야겠지. 그렇게 다음 중량을 준비하면서.


> 이날 운동의 기록 :

https://www.youtube.com/shorts/QV4QpsBRm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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