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을 채우는 즐거움

후면 어깨 운동

by 박보라

요즘 나는 내 뒷모습을 자주 확인한다. 정확히는 어깨의 가장 뒤쪽, 남들의 시선에는 잘 닿지 않지만 옷감의 텐션을 결정짓는 아주 작은 근육, 후면 어깨(후면 삼각근)에 빠져 있다.


이전에는 복부나 힙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을 채우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것. 어깨가 단순히 평면적인 선이 아니라 둥글게 입체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 뒤쪽의 조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내 루틴의 주인공은 벤트오버 레이즈와 페이스풀. 어떤 운동을 하건 마지막엔 후면 어깨 운동을 하게 됐다. 이 운동들은 대단한 중량을 자랑할 수 있는 종목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는 독이 된다. 아주 가벼운 덤벨을 쥐고 허리를 숙인 채, 오직 어깨 뒤쪽의 자극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날갯죽지가 아니라 어깨 끝에 힘을 건다는 그 미세한 감각. 그 감각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은 고중량 운동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성취감이 있다.


특히 벤트오버 레이즈를 할 때, 한 세트당 60번씩 반복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통증. 그건 ‘아프다’는 감각을 넘어선다. 반복적인 횟수가 거듭될수록 근육 속에 뜨거운 열기가 차오르고, 마침내 그 부위가 찢어질 듯 팽팽해질 땐 만족감이 든다. 이 반복적인 고통이야말로 근육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가장 정직한 신호이지 않을까.


어쩌면 운동의 진짜 매력은 이 '반복되는 고통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육이 차오르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그 지루하고 따가운 통증을 기꺼이 견뎌냈을 때 주어지는 전리품 같은 것. 펌핑감이 최고조에 달해 어깨가 살짝 부풀어 올랐을 때, 그 어깨 한덩이가 내 작지 않은 손에 꽉찰 때.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기꺼이 덤벨을 들고 허리를 숙이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이 지독한 집착의 시작은 얼마 전 들었던 사소한 칭찬 한마디였다. "어깨가 진짜 좋네요!" 그 짧은 찬사가 발단이 되어 나의 시선은 온종일 어깨 끝자락에 머물게 되었다. 칭찬은 슬픔만큼 무거운 참치도 춤추게 하겠지. 그 칭찬은 나에겐 덤벨 한 번 더 들게 하고 거울 한 번 더 보게 하는 강력한 연료가 된 셈이다.


관심이 깊어지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동작이 어렵고 자극점을 찾기 힘들어 멀리했던 '사이드 래터럴 레이즈'도 이제는 루틴의 필수 코스가 됐다. 팔을 옆으로 들어 올릴 때마다 측면 삼각근이 반응하는 그 찰나를 찾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칭찬받은 그 라인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 보고싶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나를 움직이게 됐다.


어깨를 보는 눈이 밝아지니 예기치 못한 고민도 생겼다. 거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왼쪽 어깨가 오른쪽에 비해 묘하게 약해 보이는 것이다. 그 미세한 부피 차이와 힘의 불균형을 두고 한참이나 고민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헛웃음이 나온다. 평소 이성적이고 털털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고작 근육의 비대칭을 두고 한참을 거울 앞에 서있을 줄이야. 화장하는 시간보다 어깨를 쳐다보는 시간이 더 길다면, 누군들 믿어주려나.


어찌보면 사소하고 희한한 걱정이겠지만, 이런 데에 집착하게 된 내가 조금 마음에 든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새롭다. 왼쪽이 약하면 한 세트 더 정성껏 채우고, 자극이 부족하면 각도를 더 세밀하게 조정해보는 과정. 내 몸의 아주 작은 불균형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시간을 보내는 게, 내가 이제서야 나를 돌보기 시작한 것 같아서 스스로 대견한 마음도 든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레이즈를 하며 내 어깨의 선을 살핀다. 비록 왼쪽 어깨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안나오는 숙제가 남았지만 뭐 어떤가. 이 지독하고 사소한 고민들이 쌓여 결국 내가 원하는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줄 텐데. 칭찬 한마디로 시작된 하루하루의 운동에서,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둥글고 입체적인 내일의 나를 만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heavy.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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