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반납하는 일
밤의 헬스장은 한산했다. 토요일이란 특징 때문인지 기구 사이를 오가는 분위기도 고요했고. 피로가 겹겹이 쌓인 한 주. 평소라면 거뜬했을 플레이트의 무게가 유독 어깨를 짓눌렀다. 그때 랙 주변으로 주변 운동인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조용한 주말 저녁, 차분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분위기.
공간을 채운 그 에너지는 기운없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주춤거리는 순간마다 공기를 타고 적절한 격려가 전달되었고, 세트 사이의 휴식마다 타인의 운동을 슬쩍 훔쳐보면서 힘을 얻었다.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건 너무나 공식화할 수 없는 격려이기에, 그 무언의 격려 뒤에 세워진 거대한 벽도 실시간으로 실감해야 했다. 서로 자극을 받으며 고무될수록 거리는 선명해진다. 한 자리에서의 루틴이 끝나면, 그 격려 시스템은 예고 없이 끝난다. 마지막 세트가 끝나는 순간, 방금까지 주변을 감쌌던 그 동력은 한순간에 회수된다. 공간은 순식간에 진공이 되고, 온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모두가 떠난 자리. 거기서 나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남은 중량을 느꼈다. 물리적인 무게는 이미 랙에 걸렸지만, 손바닥에 남은 질감과 그 주변 격려자들의 잔상은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돌았다. 오늘의 루틴은 분명 마감되었지만, 내 안의 세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허공을 돌았다. 쿨다운을 거치지 못한 몸은 아직 과열된 상태였고, 마감하지 무게는 더 집요하게 나를 붙들었다.
비워진 랙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 더 견뎌보면 이 무게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느다란 희망이 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스쿼트 랙 안에 갇힌 채 아주 오랫동안 엉거주춤 서 있다. 풀 스쿼트로 깊게 내려갔다가 완전히 깔려버리든, 아니면 힘차게 밀고 올라와 랙을 벗어나든 결론을 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무너져버리기를,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비대칭이 파열음과 함께 끝나버리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깔리는 과정에서 잃게되는 것들이 무서워 끝까지 내려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시 일어설 자신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정지해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엉거주춤한 상태가 일상이 되었고.
얼마나 바보 같은지. 다리는 떨리고 허리는 찌릿, 아파오는데 그저 누군가가 나타나 이 무게를 나누어 들어주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될 듯 말 듯한 동력을 원망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바닥을 찍고 올라올 용기는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텨왔던 지난 시간은 정말이지, 고문이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타인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쇠붙이의 냉기뿐이란 걸. 빌려온 에너지가 사라진 공간에서 나는 조금도 이 무게를 스스로 밀어 올릴 수 없었다. 그 다정했던 에너지들은 유통기한이 만료되면 반드시 회수되는 임시용이었을테니까.
바벨 아래에서 느꼈던 찰나의 희망. 그 공기에서 고무되었던 것이 내 실력인 줄 착각하면서 나는 기어코 그 침묵 아래 긴 시간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잠시나마 나도 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사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시간은 이미 너무 흘러버렸고, 나도 이제 랙을 떠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어쩌면 들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매달렸던 그 가혹한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그 무게는 내게 훈련이 아니라 자학이었다.
손바닥을 비벼 남은 온기를 털어냈다. 비어 있는 벤치를 비추는 차가운 조명. 내가 받은 에너지는 그냥 보급형 이었을 뿐. 벤치를 비추는 무심한 조명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두운 밤거리를 걷는다. 오늘의 운동은 끝났고, 오늘로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랙 위에 완전히 반납했다. 이제 더 이상 비어 있는 자리를 돌아보며 허수 같은 숫자를 세지 않을 것이다. 마감되지 않은 무게는 주말 헬스장의 정적 속에 두고 나왔다. 가벼워진 어깨로 내 궤적을 좀 더 예쁘게 완성시키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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