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범죄사이, 유쾌한 듯 노빠꾸인 미친 영화
※ 이 글에는 영화 발코니의 여자들에 대한 스포일러성을 최대한 자제한다고 했으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하고 싶다면, 이 글을 피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로 노에미 메를랑 감독의 '발코니의 여자들'을 보고 왔다. 사실 이번 전주에서 그나마 제일 끌리는 영화를 고르긴 했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강렬하게 시작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결국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이 선택 앞에서 그녀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구급차를 요청한다. 후회의 기색은 없고, 오히려 오래된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이 살인 사건이 일어난 아래층으로 카메라는 시선을 옮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모두 이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이다. 작가지망생이자 이웃집 ‘핫가이’를 짝사랑하는 니콜, 성에 대해 자유로운 태도를 가진 캠걸 루비, 그리고 남편의 집착을 피해 친구 집에 머무는 배우 엘리즈. 이 셋은 니콜의 짝사랑 상대인 남자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찾았다가, 다음날 그가 기묘한 방식으로 죽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죽음을 감추기 위한 선택들이 이들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발코니의 여자들은 단순한 블랙코미디나 범죄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정폭력의 트라우마, 비동의적 성관계, 우발적 살인과 같은 날카로운 이슈들이 교차한다. 여기에 살해된 남성들이 유령처럼 등장해 여성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설정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명확한 결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여성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완전히 명료하거나 일방적인 목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캐릭터들의 태도와 감정, 선택들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아서, 어떤 관점에서든 쉽게 판단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이 있어 그렇게 읽기엔 다소 당황스럽고 애매한 면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남성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100% 이해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떤 장면은 말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특정 해석은 자칫 위험하거나 비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영화였다. 어떤 의미에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노출의 수위다. 거리에서 여성의 신체 상체가 드러난 채 자연스럽게 걸어 다니는 인물들, 그리고 가슴을 부각한 클로즈업, 과감한 노출 의상들, 그리고 자위행위(?) 등등 프랑스 영화라지만 그 안에서도 유난히 수위가 높은 편이라 보는 내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잔인한 장면도 마찬가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폭력의 묘사가 꽤 거칠고 직설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피해자가 되어버린 유령과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구조다. 처음엔 누가 피해자였고, 누가 가해자였는지가 분명했던 관계들이 시간이 갈수록 모호해진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누군가의 선택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식의 이상하고 불편한 구조. 그 불균형 안에서 관객 역시 계속해서 중심을 잃게 된다.
장르적으로도 꽤 복잡하다. 코미디, 공포, 서스펜스, 스릴이 한데 뒤섞여 있는데, 그 결합이 유기적이라기보단 의도적으로 비틀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보고 나서도 한참 멍하게 만들었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영화였고, 그래서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이 작품은 이미 국내 수입이 확정된 상태로, 머지않아 국내 관객들과도 만나게 될 예정이다. 정확한 개봉일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어떤 감정들이 오갈지 궁금하다.
나 자신도 이 영화에 대해 좋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걸리는 지점이 있고, 싫었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나 기묘하게 매혹적인 장면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영화라는 점. 호도 불호도 아닌 애매모호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