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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1960)

지옥이라는 시각화, 그리고 죄의 윤회

by 원일



오늘 소개할 영화는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의 1960년 작품 '지옥'이다. 제목처럼 지옥으로 드롭되어 겪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 묘사를 넘어서 촬영기법과 연출 면에서 196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독특한 감각을 보여준다.

‘죄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죄를 외면하는 것도 죄’라는 관점을 다루는 듯했던 이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며 불교적 세계관으로 확장된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에 익숙한 입장에서 이 전개는 꽤 낯설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옥이란 도대체 어떤 공간인가?”라는 당황스러움마저 들 정도였다.


영화의 대부분은 대학생 시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죄와 죄책감, 선택과 무책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극이 전개되고, 마지막 3분의 1 지점에서야 본격적인 ‘지옥도’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짧은 지옥 묘사는 비쥬얼과 미감이 독특하다.

1960년의 지옥 / 신과함께의 나태지옥


지옥을 테마파크처럼 비주얼 화한 현대 영화들, 이를테면 〈신과 함께〉과 비교하면, 〈지옥〉의 후반부는 훨씬 더 혼란스럽고 감각적으로 ‘지옥 같다’. 아날로그 시대 특유의 촌스러움이 오히려 기괴함을 배가시키며, 마치 제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괴시의 세계에 빠진 기분을 준다. 어떻게 이런 비주얼을 그 시대에 구현했을까 싶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광기와 미감이 충돌한다.



비슷한 느낌의 소재로 진행되는 지옥이라는 이름의 영화는 세편이 존재한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1960년의 지옥. 1979년의 지옥, 1999년의 신 지옥



1960년 지옥은 고전 설법의 외형을 빌려, 시각과 청각을 통해 '죄'를 조용하게 때론 확실하게 조여 온다. 결국 모든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는 윤회의 고리를 펼쳐 보인다. 후반부 지옥의 묘사는 시대의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려는 창의의 결과물처럼 느껴지며, 촌스럽다기보다 오히려 그 아날로그함이 진득한 지옥의 열기처럼 다가온다.




1979년 마츠모토 코지의 '지옥'은 훨씬 더 혼란스럽고 음침하다. 이 영화의 지옥은 내면의 죄의식보다는 외부 세계, 특히 왜곡된 사회와 그 속의 인간 군상을 통해 만들어진다. 폭력과 종교, 성과 위선이 얽힌 세계는 사실상 현실 그 자체가 지옥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정제된 비극을 다룬 1960년과 달리, 이 작품은 마치 온몸을 긁는 듯한 미감과 에로티시즘 한 장면들도 감각적이게 때로는 불쾌하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1999년의 '신 지옥'은 나카가와의 원작을 정면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원작보단 정제된 미감에 가깝고 오히려 C급영화의 비주얼로 보인다. 구조는 비슷하지만 감정의 결은 훨씬 못하다. 지옥의 묘사는 기술적으로는 더 정교하지도 않고, 어딘가 허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고문에 가깝고 페이크에 가까워 보이는 연출이 최악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원작이 나직한 설법이라면, 이쪽은 도식화된 재현에 가깝다.

이 세 편은 같은 제목을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시대의 윤리, 감정, 사회를 반영한 서로 다른 지옥을 보여준다. 60년대의 ‘죄와 업보’, 70년대의 ‘사회와 분노’, 90년대의 ‘반복과 거리감’. 같은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세 영화가 도달한 지점은 각기 다른 결말을 가진다. 이름은 같지만, 지옥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확실히 독특한 영화지만, 아무 기반 없이 뚝 떨어진 작품은 아니다. 전통적인 일본 괴담극이나 불교 설화, 그리고 당시 유럽 영화들에서 영향을 받은 흔적이 은근하게 스며 있다.

과장된 세트나 극단적인 조명, 정적인 구도는 가부키나 노(能) 같은 일본 전통 연극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고, 죄와 벌, 업보 같은 테마는 불교적인 세계관에 아주 밀접해 있다. 고전 표현주의 영화들의 영향도 있을 거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같은 작품) 감정이나 심리를 외부로 끌어내 그 시대의 분위기와 전통, 종교적 테마, 그리고 실험적인 연출들이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룬 결과물 같았다.


아마도 다음 222가지 그림자에 포함된 영화 중에서는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연출의 일본 영화들이 있을 거다. 7-80년대 그로테스크 혹은 핑크무비들이 다소 이 영화의 연출법에 영향들을 받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연출력이나 영상미, 그리고 지옥을 다루는 독특한 접근이 꽤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영화지만, 아무에게나 추천하기엔 조금 도박 같은 작품이다.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라 쉽게 권하긴 어렵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나 과감한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김혜자, 손석구 배우 주연의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드라마에서 이 영화와 동일한 불교 기반의 지옥도와 심지어 새 지옥도 (키보드 형벌 지옥도도 있드라구요? 알 권리 주장하는 부분서 통쾌하드먼유.) 가 같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글쓰는 것과 잘 맞는 작품이 또 나온거 같아서 다행인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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