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라는 세계, 그녀를 위한, 의한, 함께한 헌정사
한국 드라마를 딱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흥미를 많이 갖지 않는 쪽에 가깝다.
원래 취향이 김순옥 작가의 막장 계열이다 보니, 요즘처럼 정제된 드라마들과는 결이 좀 다른 거친 감성을 좋아한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볼 영화가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슬쩍 시리즈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물론 그간 화제작들은 그때그때 챙겨보긴 했지만, 한 주 한 주 기다리는 건 영 성미에 안 맞아 웬만하면 몰아서 보는 편이었다.
그러다 작년의 정숙한 세일즈,
올해는 그놈은 흑염룡,
넷플릭스인데도 4주에 걸쳐 방영했던 폭싹 속았수다,
거기에 동시에 방영한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생활까지.
어느샌가 매주를 버티는 일이 당연해졌고,
그 기다림이 익숙해질 무렵 6편 정도 나왔던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게 됐다. 누나집에서 보다가 재밌어서 첫 화부터 정주행을 하게 되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기 시작한 건 사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김혜자 선생님과 손석구 배우가 부부라고?
이 조합만으로도 이미 궁금증이 컸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냥 그저 그런 한국 드라마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중반, ‘지옥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는 속으로 “이야… 크으…” 하고 말았다.
마침 그 시기에 222가지 그림자를 쓰며
1960년대 영화 지옥에 대한 리뷰를 준비하던 중이라
더욱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초반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느슨해지고, 리듬이 더뎌지는 면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반복되는 인과의 구조와 감정선이 나름의 힘을 가졌다. 무엇보다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단단하게 이야기를 붙잡고 있어서 결국 마지막까지 시청하게 됐다. 결말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에?” 했지만 전혀 납득되지 않는 건 또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결국 김혜자 선생님을 위한, 김혜자 선생님에 의한, 그리고 김혜자 선생님 그 자체의 헌정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석구 배우도, 한지민 배우도
선생님과의 호흡을 위해 기꺼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따뜻한 배려와 존경의 온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천호진 배우님의 1인 2 역이었다. 천국 센터장의 모습과 지옥에서의 염라대왕은 두 얼굴로 다른 세계의 온도를 절묘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짜장, 짬뽕, 만두, 소냐까지 동물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서사의 주체가 되는 순간들이 있어 의외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름 따뜻하고 좋았던 드라마였다. 현실을 은유로 풀어낸 이야기들 속에서 위로받기도 했고,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장면들도 많았다. 다만 요즘은 드라마들이 16부작이 아닌 12부작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 좀 정들었다 싶으면 훅 떠나버려서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만큼은 드라마 시리즈에 꽤 진심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나올 드라마 중 눈에 가는 게 없어 당분간 이 드라마가 마지막을 장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