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하는 것들이 위협이 되다?
오늘은 오랜만에, 예전에 내가 부방장을 맡았던 영화 모임 사람들과 함께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를 다녀왔다.
2시간 46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다 시작 시간도 꽤 일러 조금은 망설였지만, 계속 궁금했던 작품이기도 했기에 주저 없이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테헤란의 수사판사 이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가 승진하던 시기, 거리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혼란 속, 그의 집에서도 작은 균열이 시작된다. 딸들과의 갈등 끝에, 집안에서 이만의 권총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총을 둘러싼 긴장감은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 믿음의 붕괴와 감시, 억압, 두려움, 신뢰라는 키워드들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여성의 자유를 외치는 외부 세계의 움직임과,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가족의 대립은 서로 맞물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결국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겨진 정치와 억압의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긴 러닝타임(2시간 46분) 동안 대사량도 많은 영화였다. 하지만 오히려 함축적으로도 전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은 지나치게 느슨했고, 중반부터 슬슬 긴장이 시작되다가 후반부는 너무 시끄럽고 과하게 고조되기만 했다. 차라리 이 모든 걸 절반으로 줄였다면 훨씬 더 설득력 있었을지도 모른다.
히잡 착용 반대 시위나 사회적 억압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 속 이야기다. 폐쇄적인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는 기성세대와 변화의 목소리를 내는 젊은 세대의 충돌. 낯설지만 동시에 굉장히 익숙한 대립이다. 결국 어디서나 세대 간 신념의 차이는 존재하니까. 이게 종교가 끼면 더 복잡하고 사족만 길어지니 넘어가는 걸로.
이 가족의 갈등은 정말 너무 답답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구마 1000개를 삼킨 듯한 느낌. 딸이 겨우 사이다 한 마디 터뜨리면 부모가 그 위에 고구마를 얹는 식의 전개가 반복되는데, 이 패턴이 꽤 지치는 감정 소모를 유발했다. 이게 자주 반복되니까 나중에는 지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다.
연출만큼은 인상 깊었다. ‘내가 믿는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고, 나조차 누군가를 위협할 수 있다.’
히잡, 총, 스마트폰, 그리고 무례한 시선과 침묵의 권위까지 세상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작품성으로 보자면 분명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너무 답답했다. 너무 길었고, 감정선은 자주 늘어졌으며, 그 고구마 같은 상황이 반복될수록 점점 불호의 감정이 커졌다.
또한 사회적 맥락과 이란의 현 상황, 여성 억압 이슈 등을 모르면 진입장벽도 있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최소한의 배경지식은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거날 개봉하던데, 우연이겠거니와.
P.S ) 3670의 박준호 감독님이랑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먼저 알아봐 주셨다. 같은 영화 보러 오셨다는 게 너무 갑자기 내적친밀감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