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무한한 시간의 유한성
드디어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해피엔드를 보게 되었다. 슈가 글라스 보틀 같이 봤던 지인과 함께 보고 왔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 엔드는 잦은 지진과 일상 감시 체계가 공존하는 근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정돈된 도시 같지만, 그 안엔 억압과 긴장이 촘촘히 깔려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 서사를 다루지 않는다. 배척과 다문화, 타자화된 존재들에 대한 시선, 일본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까지 조용히 스며들 듯 건드린다. 장면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텍스트 너머의 서사는 꽤 오래 여운을 남긴다. 연출적으로는 카메라 무빙과 롱테이크가 특히 인상 깊었다. 인물들의 감정을 거리감 있게 때론 가깝게, 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줬다. 화면은 정적인데, 그 안에 흐르는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와중에 청춘영화의 면모도 챙겼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전반부의 웅장한 분위기, 테크노 사운드로 채워진 중후반의 리듬, 그리고 묵직하게 닫히는 엔딩까지. 다층적인 감정이 음향을 통해 전달됐다. 특히 영화의 첫 장면에서 흘렀던 음악은, 문득 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떠올리게 했다. 감독의 부친인 류이치 사카모토를 향한 헌정 같기도 했고, 영화 전체를 감싸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네오 소라 감독의 플레이리스트가 괜히 궁금해졌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이 세계를 만들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영화였다.
다섯 친구들이 하나가 되어 껴안는 장면. 감정은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연대와 위로의 기운은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온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거창하지 않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감싸주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진심처럼 느껴졌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결에서 오는 무게감과 여백이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괜찮은 청춘영화를 봤다’는 기분이 들었달까. 물론 무심코 밥 먹으면서 틀어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닐 테고,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얕은 듯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되는 영화라서.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청춘을 말하는 방식이 꽤 진심이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