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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안 스킴

이제는 더 새롭지 않은 웨스 앤더슨표 동화

by 원일



웨스 앤더슨의 미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개봉 주에 봤어야 했지만, 귀차니즘이 또 발동해 결국 일주일쯤 늦게야 신도림 씨네큐에서 관람했다. 칸 스페셜 티켓도 받을 겸, 마음먹고 다녀왔다.


줄거리는 1950년대 가상의 중동 국가 ‘페니키아’를 배경으로, 권력과 유산, 부녀 관계 속 감정의 층위를 그리는 이야기다. 수녀였던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사업에 관여하게 되며, 혁명과 음모, 비밀들이 뒤엉킨다. 겉으로는 정제된 미장센이지만 그 안엔 복잡한 감정과 구조가 숨어 있다.

베네치오 델 토로는 여전히 묵직한 존재감과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톰 행크스, 리즈 아메드, 브라이언 크랜스턴,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얼굴을 비춘다. 그 가운데 낯익지 않았던 미아 트리플턴의 연기가 유독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배우라 인상 깊었는데, 알고 보니 케이트 윈슬렛의 장녀라고. 눈에 남는 인상이었다.


연출적으로는 흑백 필름 장면이 천국 속의 절망을 드러내는 느낌이면, 이후 파스텔톤의 현실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방식도 인상 깊었다. 다만 프렌치 디스패치를 비롯해 웨스 앤더슨의 기존 영화들에서 이미 많이 봐온 연출적 장치들이 반복되면서, 피로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동화적인 스토리텔링 역시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느껴졌다.

앤더슨의 미감은 여전히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만큼 익숙해진 감각들이 때로는 이야기를 압도해 버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좋았지만, 더는 놀라운 작품은 아니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故 김기영 감독의 ‘자가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은 조금 다른 게, 전작과는 분명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출이나 톤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감독의 스타일이 너무 확고하다 보니, 이야기와는 별개로 연출 자체가 자가복제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문득 10년 가까이 비슷한 톤을 유지해 온 그의 필모를 돌아보게 됐다. 물론 이건 이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사나–저주의 아이'를 봤을 때도 주온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아 감독에게 의도한 바가 있는지 여쭌 적이 있다. 그때 “같은 사람이 만든 거니까요. 의식하지 않아도 잠재되어 있을걸요?”라고 답하셨던 게 기억난다. 아마 웨스 앤더슨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특유의 미감, 카메라 프레임, 연출의 효과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영화는 여전히 흥미롭고 즐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장점들이 오히려 단점처럼 다가와서, 전보다 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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