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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Dec 24. 2015

15. 잊혀지지 않는  크리스마스이브



7년 만에 홀로 맞는  크리스마스이브.


모처럼 솔로가 돼서 그런지 23일까지는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곳도 많고, 송년회도 줄줄이 있었는데,

24일이 되자 거짓말처럼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그곳에서 내년 초까지 쭉 있을 생각이다.



이브의 기차 안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탔다.


대부분은 다음 주에 휴가를 내고 고향에 가는 가족들이 많다.

복도에선 애들이 돌아다니고, 저 기차간 끝에선 아기 하나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나처럼 혼자인 사람도 제법 있다. 그들의 표정을 읽어보려 하지만 도통 알 길이 없다.

다만 쉴 새 없이 누군가와 카톡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다행히도, 이 밤에 연락할 짝이 있나 보구나 싶다.


어디론가 놀러 가는 커플들도 많이 눈에 띈다.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단 둘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짝이 있는 사람들은, 의무처럼, 이 날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는 한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녀들을 보며 너와 함께 보냈던 지난 여섯 번의 크리스마스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당시 기숙사 조교일을 하고 있던 너는,  크리스마스이브 날도 당직을 서게 되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나는 케이크도 사고, 치킨도 시켜서 한 상을 차려놓고 너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겨우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네가 전화를 걸었고, 나는 초에 불도 붙이고, 맛있는 치킨도 보여주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쳤다. 5.1인치 너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혔다. 내 얼굴은 화면 귀퉁이에 잘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함께 후, 불어서 촛불도 끄고, 잘 있냐고, 춥진 않냐고 안부를 물었었다. 서로 슬픈 표정은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이브날 연인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서 우리는 더 웃기만 했다.


그때 내년에는 꼭 이브를 같이 보내자고 약속했는데,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보낸  크리스마스이브도 많을 텐데, 왜 그런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작년만 생각나는지...



아마도 함께 할 수 없기에 더 간절했고, 만져 볼 수 없기에 더 애틋했기 때문이겠지.








넌 기숙사 조교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으니,

아마도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절 되기 바래.


그리고 미안해_

올해, 또 앞으로도.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있어 주지 못할 것 같다.




잘 지내고, 건강해.


201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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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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