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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 Jan 03. 2016

17.  서른둘이 되었다




2016년, 한국 나이로  서른둘이 되었다. 










스물아홉.

이제 곧 이십 대가 끝난다는 생각에 온갖 유난을 떨었다. 

괜히 '서른 즈음'에와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이십 대가 끝나면 마치 세상이 끝나버릴 것 마냥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홉수는 실제로 존재했는지  이것저것 안 풀리는 일들이 많았고,

이제 내년이면 서른인데, 아직 '어른'에는 한참 못 미치는 내 모습이 몹시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서른. 

오히려 서른이 되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생각보다 나는 늙은 것도 아니었고, 꼰대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더 여유가 있고, 조금 더 성숙했고, 조금 더 내 삶의 계획을 스스로 세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서른 하나. 

불현듯, 우리 아빠가 내 동생을 낳은 나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서른한 살 때 네 명으로 완성(?!)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 결혼도 못하고 있으니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조급함이, 그녀와 나를 극한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결혼은커녕,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둘. 

서른둘이 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한국 남성의 초혼 연령은 32.4세라고 한다. 나는  32.01세쯤 되었는데 아직 짝이 없으니 아마도 그 평균에 맞추기는 벌써 틀렸구나 싶다. 

그래도  서른둘까지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결혼 적령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제 한 살만 더 먹으면 나도 "늦었다."라는 말을 듣게 되겠지. 


서른둘. 

당신과 내가 아직 미혼이라면,  서른둘은 아마도 온통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을지 모른다. 








새해를 맞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쉬면서 과연 이  서른둘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역시나 온통 결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뾰족한 답도 없으면서 그냥 끙끙거리기만 했다. 들어오는 대로 소개팅을 열심히 해야 하나. 이제 '선'이라는 것도 봐야겠지. 이러다 다 안되면 정말 듀O에 가입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나 이제 어쩌지. 너무 늦었나 봐. 망했어. 이러다 평생 혼자 살면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답도 없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마침내 마음의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난 왜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32.4세라는 통계. 주위 사람들의 시선. 막연한 불안감. 사회적인 통념들...

내가 이렇게 골치가 아픈 이유가, 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일까. 난 왜 결혼을 하고 싶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고민은, '결혼을 어떻게 할까?'가 아니고, 

'어떻게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아닐는지. 



결혼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타인을 바라본다면, 내가 정말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당분간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일까?


내 사랑을 '결혼'으로 제단 하는 게 맞는 것일까?


'결혼'이라는 압박이 너무나 심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서른둘.

사랑하고 싶다. 

결혼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다. 

결혼은 사랑의 과정인데, 어떻게 사랑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뜨겁게. 정말 행복하게.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결혼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는 것.


순간순간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런 다짐들을 뒤흔들겠지만, 그래도 올 한 해 이 다짐들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른둘이 되었다. 

열심히 준비하고, 한 살 더 성숙하되, 철없이 사랑하는 올 한 해가 되기를_







(사랑합시다. 올 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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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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