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된 자의 특권
원래 내게는 이상형 같은 건 없었다. 이전 글을 통해 연애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사랑은 꼭 '어떤 사람'이라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그녀는 어떤 요소들로 설명할 수 없는, 그저 '전체'로서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서른 하나가 되어 솔로가 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개팅을 해야 했다. 소개팅을 물어보는 사람도, 또 소개팅을 부탁하는 사람도 꼭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어떤 사람이 좋은데?"
처음에는 이 질문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냥, '좋은 사람'이 좋지! 하지만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당연히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은 잘 안 맞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를 생각해주고, 지인들 중에서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는 고마운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나의 이상형을 몇 개의 문장으로 설명해야 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처음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서, 그냥 주변에서 만나보라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의 만남이 쌓여가면서, 또 고민의 시간이 더해가면서 나에게도 나름대로 '이상형'이라는 것이 생겼다.
첫 번째는, 너무 당연하면서도 무척이나 황당한 대답. 나는 예쁜 사람이 좋다.
'뭐 이런 XX 같은...'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얘기를 했다가 비웃음을 샀던 적이 많다. 혹은 너무 눈이 높다고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김태희나 초아 같은 연예인 급의 외모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내가 주관적으로 보기에 밝고, 환하고,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이없이 추상적인 얘기에, 친구들은 이런저런 묘사와 예시를 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외모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코가 높은 사람? 눈이 큰 사람? 피부가 하얀 사람? 근데 거기에는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사람을 보면 이상형 중에 신체의 특정 부위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내 친구 중에는 무조건 '귀가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이가 있다) 나는 사람을 볼 때 그런 식으로 나눠서 보지 않는 편이다. 얼굴이라는 것, 인상이라는 것은 결국 '조화'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함께 고민해 준 친구들 덕분에 겨우 찾은 나의 '예쁨'의 기준은, 이른바 '강남 미녀'형의 아름다움보다는 '밝고 환해 보이는' 인상이라는 것. 물론 이것도 엄청나게 추상적이긴 하다.
어쨌든 내가 예쁜 사람이 좋은 이유는, 평생을 함께 얼굴 보면서 살 사람인데, 진심을 다해서 매일 매일 "예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서이다. 얼굴, 그거 얼마 안 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마음이 행복해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나도, 그 사람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두 번째는, 나와 같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좋겠다.
이건 작년에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새로운 팀으로 오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아예 달랐다. 내가 '문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이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이 차이는 엄청나서, 여기로부터 비롯되어 그들과 나는 모든 것이 달랐다. 좋아하는 것, 즐거움을 느끼는 포인트, 삶의 가치와 기준,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그간 기획팀이나 전략팀 같이,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있었기에 몰랐다. 디자인팀에서 1년 간 고생하면서, 한 사람이 평생을 경험해온 '백그라운드'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 소개팅에서도 그런 것들을 느꼈다. 예체능이나 이과를 전공한 사람들과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야기를 해도 딱히 통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재미있지 않았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 똑같은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눴을 때 공감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나와 유사한 공부를 했고,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세 번째는, 동물, 특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면 더 좋겠다.
이전 글에 썼지만, 나는 강아지라고 하면 사죽을 못쓴다. 지금도 거리에서 애기들이 지나갈 때보다는,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눈에 하트를 뿅뿅 그리면서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동물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거나,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의 이런 애정과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나중에 결혼을 하면 꼭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 애기가 생기면, 같이 있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들이 좀 커서라도 꼭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은데 내 짝이 그걸 싫어한다면 정말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위에 적은 이상형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가장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그 일이 꼭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사회에 대한 봉사나, 세상을 더 이롭게하는 활동, 혹은 예술과 관련된 창작 활동이어도 괜찮다. 꿈이 있고, 비전이 있고,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한 번은 스펙도 좋고, 외모도 정말 예쁜 사람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많은 돈을 버는 일이지만, 그냥 자기가 전공한 일이고 지금껏 하던 일이니까 한다고 말했다. 문득 그런 사람과 같이 살게 된다면, 참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도 하루하루 쳇바퀴 돌아가듯 굴러가는 회사원의 삶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일이 재밌고, 항상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 일이 지겹고, 더 이상 내가 여기에 있을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면, 나는 미련 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러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실제로 그렇게 뛰쳐나왔다.)
내 짝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조금 안정적이지 않으면 어떤가. 서로 응원해 주고, 또 좋은 에너지를 나누며 그렇게 아웅다웅 산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이상형이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주제에 이상형은 무슨...'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상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이상형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솔로 된 자의 특권이었다!
연애를 하고 있을 땐, 당연히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솔로일 땐 이렇게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마음껏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이상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이상형, 즉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곧 내가 바라는 사랑이란, 연애란,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이런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사랑과 연애에 있어 불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형이 단지 '연예인 급으로 예쁘면서, 어리면서, 또 돈까지 많은 사람'과 같이 말도 안 되는 허황된 망상으로 그친다면 시간낭비겠지만, 어떤 사람과 내 삶을 나누면 행복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일부라면, 그건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상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 이게 정말 중요하다.
이렇게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이상형에 딱 맞는 사람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이 사람과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던지 간에 이 사람에게 다가가야겠다는 용기를 내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용기가 삶의 많은 것을 바꿔준다.
그건 정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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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